일부 보험사가 의료자문제도를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한 도구로 악용하고 있다.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하기 위해 도입했지만, 변질된 것이다. 병원 등 의료기관이 아닌 사설 의료자문센터와 계약하고 보험사 입맛에 맞는 의료자문 보고서로 계약자를 압박하고 있어서다.
1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대부분의 보험사가 지급보험금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사설 자문센터와 계약, 보험사에 유리한 자문을 받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의료자문제도는 보험금 지급심사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처리하기 위해 도입됐다. 보험 계약자의 청구 내용에 의학적 근거가 미비하거나 재검토가 필요할 경우, 보험사는 계약자 동의를 받고 의료자문을 실시할 수 있다. 다만 보험사의 의료자문에 대해 계약자가 동의하지 못할 경우 약관에 따라 공정한 제3의료기관을 선정, 다시 한번 검증을 받는 방식이다.
즉 ①계약자 보험금 청구 ②보험사 지급심사 ③심사 후 의료자문 필요성 판단시 보험사가 선정한 의료기관에서 1차 의료자문 ④계약자가 보험사의 의료자문 내용에 동의하지 못할 경우 제3의료기관 전문의에게 판정을 의뢰하는 순서다.
보험사는 ③번 과정에서 의료기관이 아닌 일명 ‘사설 자문센터’라고 일컫는 ‘의료자문중개업체’를 통해 자문을 받았다. 의료자문표준내부통제기준(내부통제기준) 제2조1항의 6에 따르면, 의료자문중개업체는 의료자문을 중개하는 업체로 다수의 전문의와 의료자문 계약을 체결한 곳이다.
문제는 이 사설 자문센터가 ‘의료자문은 보험금 부지급·삭감 수단으로 남용되지 않아야 한다’는 내부통제기준 제3조 1항을 위배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한 사설 의료자문센터 대표자 소개 이미지 캡쳐
사설 자문센터는 의료자문을 수임받아야 돈을 벌 수 있다. 의료자문 맡기는 곳은 대부분 보험사다. 결국 보험사에게 유리한 보고서를 작성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지적이다. 보험사들은 지난해 상반기에만 약 3만 건(생보 9439건, 손보 1만9685건)의 의료자문을 실시했다. 연간 약 6만 건을 사설 자문센터 등에 의뢰하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사설 자문센터 설립 기준이 의료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내부통제기준에도 자문의 선정 기준 및 절차는 매우 꼼꼼하게 명시를 했지만, 사설 자문센터 설립 관련 요건은 없다. 보험사 임직원이 퇴직 후 사설 자문센터 설립도 가능하다.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을 줄이기 위해 사설 의료자문을 의뢰하고, 사설 자문센터는 더 많은 수임을 받기 위해 보험사와 밀애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보험사 한 관계자는 “보험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보고서를 전문적으로 작성해주는 의료자문센터가 약 10여개 있으며, 현재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며 “해당 의료자문센터는 보험사 출신 의사(社醫)나 퇴직한 보상팀 임원이 의료자문센터의 대표자인 곳도 있다”고 귀뜸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사가 선정한 곳에서 받은 1차 의료자문 내용을 계약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제3의 의료기관을 다시 선정하고 2차 의료자문으로 검증을 받을 수 있다”며 “제3의 의료기관을 통한 자문마저 동의하지 못하는 계약자는 소송을 진행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료자문 과정에서 사설 자문센터와 보험사간 짬짜미가 있었다면 사실관계 등을 파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