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잘못 알고 갈아탔는데...승환계약 벌금은 설계사가 내라니요?

고객 단순 변심에 따른 책임까지 설계사가 "과도한 규제"

여지훈 승인 2023.05.12 13:16 | 최종 수정 2023.05.12 14:14 의견 0

#1. 보험설계사 A씨는 최근 부당 승환계약을 진행했다는 이유로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3개월 전 A씨의 권유로 신계약을 체결한 고객이 기존 계약을 해지했다는 이유다. 신계약 체결 당시 고객으로부터 향후 1년간 기존 계약을 해지할 예정이 없다고 들었지만 고객이 돌연 마음을 달리 먹은 것.

#2. 보험설계사 B씨도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5개월 전 신계약 체결 당시 고객으로부터 유사 상품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확인서까지 작성했지만 고객이 가입 사실을 깜박한 게 문제였다. 뒤늦게야 보험료가 이중으로 나가는 걸 깨달은 고객이 기존 계약을 해지하면서 부당 승환계약 판정을 받았다.

1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승환계약 관련 억울함을 토로하는 보험설계사가 늘고 있다. 좋은 의도로 보험계약을 전환해줬음에도 고객의 잘못으로 부당 승환계약으로 판명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다.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한 부당 승환계약 금지 규제가 소비자들에 적합한 상품을 추천하려는 설계사들의 의욕마저 꺾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보험연구원]

부당 승환계약은 보험모집인(설계사)이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기존 계약을 부당하게 소멸(취소‧해지)시키고 유사한 보험계약을 새롭게 청약케 하는 행위를 말한다. 피보험자가 같고 위험보장 범위가 비슷한 신구계약 간 전환이 단기간 내 이뤄진다면 전환 과정에서 부당성이 있다고 보는 것. 보험설계사가 수수료 수입 증대를 위해 고객에게 기존 계약 해지를 유도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때 기존 계약 해지 고객은 낮은 해지환급금, 신규 보험 가입 거절, 보험료 상승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또 본인 상황에 적합하지 않은 상품에 비싼 보험료를 낼 위험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 부당 승환계약 금지 규제다.

보험업법 제97조(보험계약의 체결 또는 모집에 관한 금지행위) 3항에서는 신계약 전후 1개월 내에 기존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 부당 승환계약으로 간주한다. 계약자가 손해 발생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자필 서명(전자서명 포함) 등으로 명백한 의사를 표현한 경우만 예외다.

또 신계약 전후 6개월 내 기존 계약을 해지했더라도 기본적으로는 부당 승환계약으로 본다. 다만 신구계약의 중요 사항에 대해 고객에게 충분히 비교 안내했다면 부당 승환계약으로 보지 않는다.

현재 설계사들은 부당 승환계약을 피하기 위해 승환계약 시 '보험계약 이동에 따른 비교 안내 확인서'를 작성한다. 직전 6개월 내 소멸된 보험계약이 있거나 직후 6개월 내 소멸 예정인 계약이 있는지를 묻고 고객으로부터 답변을 받는다.

여기에는 보험료, 납입 주기 및 기간, 보험금, 환급금, 공시이율 등 신구계약 간 중요 사항을 비교 안내하는 항목도 포함된다. 이중 1개만 누락되더라도 설명이 부실한 것으로 보고 부당 승환계약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설계사가 확인서를 작성했더라도 부당 승환계약 위험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우선 고객이 "6개월 내 기존 계약 소멸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고 해서 신구계약 간 비교 항목을 제대로 작성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된다. 항목 작성을 안 했는데 향후 고객이 변심이나 실수로 기존 계약을 해지한다면 비교 안내가 충실히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고 법적 제재를 받는 것.

한 법인보험대리점(GA) 대표는 "기존 계약을 해지하지 않겠다는 고객 말만 믿고 비교 안내 확인서의 항목을 작성하지 않는다면 부당 승환계약으로 판명돼 과태료를 부과받는다"며 "심지어 본인이 변심한 것이라는 고객 확인서까지 받아 제출했지만 참작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고객이 기억하지 못하거나 변심한 경우는 그 책임이 명백히 고객에게 있음에도 설계사는 경감조치나 소명기회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이러한 주장이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대답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감독원은 제재 전 두세 차례의 기회를 준다"며 "대심제와 권익보호관제도 등을 통해 피조치자에게도 충분한 소명기회를 부여하고 있으므로 경감조치나 소명기회가 없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대심제는 제재심의위원들이 제재대상자와 금감원 검사국을 대질시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제도다. 권익보호관 제도는 권익보호관을 통해 제재대상자의 소명을 청취하고 그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도록 하는 제도다. 둘 모두 제재대상자의 권익보호를 위해 2018년 도입됐다.

당초 고객이 고의로 밝히지 않거나 정보 조회를 원하지 않는다면 설계사가 기존 계약 유무를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신계약 청약이 들어오면 보험사는 고객으로부터 개인정보 이용 동의를 받고 신용정보원에 고객의 보험계약 조회를 요청한다. 신용정보원이 고객 정보를 보험사에 전달하면 보험사가 비교 안내 대상 여부를 확인한 뒤 관련 절차를 진행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도 사각지대는 있다.

한 GA업계 관계자는 "설계사가 고객의 모든 과거 계약을 조회할 수는 없다"면서 "특히 신용정보원이 설립된 2016년 이전 가입 건에 대해서는 전산상으로 확인이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기존 계약을 인지하지 못한 책임을 설계사 탓으로 돌린다면 설계사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과도한 승환계약 규제가 소비자에게 최적의 설계를 하려는 설계사의 선한 의도마저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 관계자는 "설계사가 고객의 기존 계약 유무를 알 수 없는 불가피한 사정이 명백한데도 이를 무시하고 제재조치를 강행하지는 않는다"면서 "제재 건 대부분은 설계사가 고객의 기존 계약을 인지한 것이 분명히 밝혀진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제재 건이 워낙 많다 보니 일부 조치에서 부당하다고 느낀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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