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자문을 둘러싼 오랜 논란에 전환점이 마련될지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대한의사협회가 의료자문 풀(Pool)을 직접 구성·운영하는 방안을 공식 논의 테이블에 올리면서다. 의료자문의 공정성을 높이고 분쟁 장기화로 누적된 사회적 비용과 피로를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과거에도 유사한 논의가 이뤄졌으나 실행으로 이어지지 못한 전례가 있는 만큼 이번 논의가 실제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16일 의료계와 보험업계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는 의료자문을 담당할 전문의 풀 구성과 관련해 이사회 결의를 앞둔 것으로 확인됐다. 종합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소속 전문의를 중심으로 자문의 풀을 구성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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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 결의가 이뤄질 경우 금융감독원과의 양해각서(MOU) 체결을 추진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의료자문 관행 개선을 놓고 금융당국과 의협 간 협의가 상당 부분 진전됐다는 설명이다.

의료자문 제도 개선 논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도 의료자문 공정성 논란이 확산되며 유사한 대안이 거론됐다. 하지만 이해관계 조율에 실패하며 구체화되지 못했거나 일부 과에 제한해 이뤄졌다. 당시에는 제도 설계를 주도할 명확한 주체가 없었고 금융당국의 참여 역시 제한적이었던 것이 한계로 지적됐다.

이번 논의가 이전과 결을 달리하는 지점은 금융당국과 의료계의 변화다. 의료자문을 보험금 분쟁 구조의 핵심 절차로 인식하고 제도 개선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려는 의지가 크다는 평가다.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해 8월 열린 보험개혁회의에서 중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 소속 전문의를 중심으로 한 별도 자문의 풀 구성을 공식 개선안으로 제시했다.

의협 관계자는 “의사협회가 자문의 풀을 직접 구성할 경우 특정 이해관계에 치우칠 우려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며 “의학적 전문성과 공정성을 기반으로 의료자문의 신뢰도를 회복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금감원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 과거 논의와 큰 차별점”이라며 “누적된 의료자문 불신을 해소하고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보험업계와 손해사정업계에서도 의협 주도의 의료자문 구상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그동안 의료자문은 보험금 지급 절차 중 하나로 기능해 왔지만 보험사에 편향된 자문이 반복된다는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았다. 자문 결과에 대한 불신이 분쟁 장기화로 이어졌고 사회적 비용과 피로도 역시 누적됐다. 이해관계로부터 일정 부분 거리를 둘 수 있는 의사단체가 자문 풀을 운영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부상한 배경이다.

다만 의료계 내부에서 자문의 풀 구성 방식을 둘러싼 이견도 감지된다. 종합병원급 이상 전문의 중심 구성이 유력하지만 개원가를 포함해야 한다는 반발이 나온다. 대학병원 교수 출신으로 개원한 의사가 적지 않은 만큼 이들을 배제할 경우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이유다.

이사회 결의가 통과되더라도 즉각적인 시행 역시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자문 절차와 운영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뒷받침할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시간이 필요해서다. 보험업계와 소비자단체, 손해사정업계 등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만큼 일부 진료과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거친 뒤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의협이 의료자문을 맡게 될 경우 법적 책임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지도 숙제다. 자문 결과를 둘러싼 소송이 제기돼 의협 산하 의료감정원으로 사건이 다시 넘어올 경우 기존 자문과 감정 결과가 다를 때 처리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손해사정업계 일각에서 제기되는 자문의 정보 공개 요구에 대해서는 금융당국과 의협 모두 부정적인 입장이다. 자문의 신상이 공개될 경우 민원이나 영업 방해 등 압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