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해상이 분쟁조정 과정에서 합의한 절차를 따르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문 가능 의료기관을 지정해 논란이다. 절차적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마련된 합의 장치가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지적이다. 보험계약자의 피해구제 권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현대해상은 지난해 3월 전립선결찰술을 받은 계약자 A씨가 청구한 입원의료비 지급을 거부했다. 수술의 적정성과 입원의 적정성을 문제 삼은 것. A씨는 주치의 소견서까지 제출했다. 하지만 자체 의료자문 결과를 근거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동일한 수술에 대해 생명보험사인 메트라이프는 지급을 결정했다.

[이미지=현대해상]

A씨는 '직접 진료나 수술에 관여하지 않은 신원 미상의 의사에게 보험사 일방이 서면으로만 문의해 진행하는 의료자문 방식'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에 금융감독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금감원은 종합병원 이상 제3자 의료기관을 양측이 합의해 선정한 뒤 해당 전문의 소견에 따라 지급 여부를 결정하라고 권고했다. 현대해상은 이 동시감정 절차에 따르겠다는 뜻을 밝혔다.

동시감정은 보험사의 자체적인 의료자문과 달리 양측이 합의한 제3자 전문의 소견을 통해 분쟁시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다. A씨가 가입한 상품 약관에도 양측이 합의하지 못할 경우 함께 제3자를 선정하고 그 의견에 따를 수 있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다. 금감원과 보험협회가 마련한 의료자문 표준내부통제기준에도 동일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현대해상은 건국대병원, 한양대병원, 중대광명병원, 한림대평촌성심병원 등 4개 병원에서만 동시감정이 가능하다며 A씨에게 제한된 풀을 강요했다. A씨가 종합병원 범위를 넓히겠다는 뜻을 거듭 전했지만 자사의 의료자문중개업체에 등록된 기관만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의료자문중개업체는 다수의 자문의 풀을 갖추고 보험사와 자문의 간 의료자문을 중개하는 업체를 말한다. 통상 보험사의 자체 의료자문을 대행해주는 역할을 하므로 보험사에 유리한 판단이 나오기 쉽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A씨는 현대해상 측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 보험전문 변호사는 “약관에는 보험사가 주장하는 의료기관 제한 규정이 없다”며 “금감원 권고를 수용한 회사가 제한된 병원만 선택하도록 안내했거나 계약자가 직접 병원을 제시하겠다고 반복해서 밝혔는데도 이를 거부한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계약자가 병원을 직접 찾기 어려워 보험사가 자체 풀에서 추천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국내 전문의 분야에 따라 선택폭이 좁아지는 것도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보험사는 특정 병원으로 제한하지는 않는다”며 “중개업체 등록 기관만 가능하다는 안내가 사실이라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취재가 시작되자 현대해상은 기존 입장을 바꿨다. 회사는 A씨에게 연락해 오해가 있었으며 중개업체에 등록되지 않은 병원이라도 자문이 가능하다면 제시해 달라고 안내했다.

A씨는 “종합병원급 제3자 의료기관 후보는 이미 확보해놨다”며 “여러 차례 추가 병원을 요청했지만 회사는 중개업체 등록 기관만 선택하라고 반복했다”고 말했다. 이어 “제보 이후 말을 바꾸며 소비자 오해처럼 책임을 돌리는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며 “소비자 권리를 침해한 사안으로 금감원에 재민원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통상 개인이 직접 병원을 찾아 자문의를 선정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업체를 통한 절차가 빠르고 수월하다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피보험자가 직접 리스트를 제시하면 진행 가능 여부를 검토해 다시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