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손해보험이 보험업계 최초로 기본자본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며 자본건전성 제고에 나섰다. 기본자본 지급여력비율 규제 도입이 예고되면서 70%대에 머물던 기본자본 지급여력비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선제적 조치로 풀이된다. 다만 향후 다른 보험사로 확산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의 시각이다.

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DB손보가 실시한 5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수요예측에 총 1조1970억원의 자금이 몰리며 흥행에 성공했다. 최종 금리는 공모희망금리(3.5~3.8%)의 상단인 3.8%, 발행금액은 당초 계획보다 늘어난 7470억원으로 최종 확정됐다. 이번 발행으로 DB손보의 기본자본 지급여력비율은 기존 79.7%에서 87.3%로 약 7.6%포인트 개선될 전망이다. 올 상반기 말 기준 이미 210%를 웃돈 지급여력비율 역시 220.9%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미지=챗GPT]

금융당국은 자본의 질적 개선을 유도하기 위해 기본자본 지급여력비율 규제를 마련해 적기시정조치 요건으로 도입을 예고한 상태다. 아직 구체적인 규제 기준이 나오진 않았지만, 해외 사례를 감안하면 50~70% 수준이 될 것이란 게 업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기본자본 지급여력비율을 단기에 제고하기 위한 수단으로는 유상증자 외에 기본자본 자본증권 발행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기본자본 자본증권은 그동안 보험사들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과는 성격이 다르다. 손실흡수에 즉시 사용할 수 있어야 하며(가용성), 사실상 만기가 없고 콜옵션 미행사시 금리상향 조건 등으로 인해 투자자의 중도 상환 기대를 유발하지 않아야 한다(지속성). 또 일반 채권이나 보완자본 자본증권보다 후순위여야 한다(후순위성).

특히 이자(배당)는 상법상 배당가능이익 한도 내에서 지급하고 보험사가 지급에 대한 완전한 재량권을 보유해야 한다. 부실금융기관 지정이나 적기시정조치가 내려지면 배당 지급을 취소할 수도 있어야 한다(기타제한의 부재). 이자가 비용 처리되지 않고 자본에서 배당 형태로 곧바로 차감되므로 배당가능이익이 부족한 보험사는 발행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법적으로 제한은 없지만, 이자 지급 안정성이 떨어지는 투자처에 수요가 몰릴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대형사라고 해서 발행여력이 충분한 것은 아니다. 가령 한화생명과 현대해상의 올 상반기 말 기준 기본자본 지급여력비율은 각각 59.5%, 53.8%다. 향후 도입 기준으로 거론되는 50~70%의 중하단에 있는 만큼 안정권에 있다고 보긴 어렵다. 특히 한화생명의 경우 지난 1분기(64.7%)에 비해 급감했다.

하지만 두 보험사는 배당가능이익이 뒷받침되지 않아 기본자본 자본증권 발행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대표적인 걸림돌로 막대한 해약환급금준비금이 꼽힌다.

한화생명과 현대해상의 해약환급금준비금은 올 상반기 기준 각각 4조6721억원, 4조3265억원이다. 모두 직전 분기(한화생명 3조9338억원, 현대해상 4조1610억원)보다 크게 증가한 수치다. 이익잉여금 내 비중은 각각 66.4%, 55.2%에 달한다.

해약환급금준비금은 계약자 해지에 대비해 적립하는 보험업감독규정상 법정준비금이다. 보험부채가 시가 평가되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아래 과도한 자금 유출을 방지하고 계약자 보호를 위해 이익잉여금 내 신설됐다. 이익잉여금 규모가 같더라도 준비금이 많을수록 배당 여력은 줄어들게 된다. 해약환급금준비금 증가 속도와 규모가 큰 두 회사의 기본자본 자본증권 발행 가능성을 낮게 점치는 이유다.

다른 대형사의 발행 가능성 역시 높지 않다. 배당 여력이 있더라도 발행 유인이 적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말 경과조치 적용 후 기본자본 지급여력비율은 삼성화재(166.4%), 삼성생명(141.6%), 신한라이프(105.2%), 메리츠화재(83.5%) 등으로 이미 높은 수준을 유지 중이다. KB손해보험만이 기존 DB손보와 유사한 78.5%다. 이들 보험사가 높은 금리를 감수하면서까지 기본자본 자본증권을 활용할 이유는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다만 각 사의 해약환급금준비금 적립 속도와 비중에 따라 변수는 발생할 수 있다.

한 보험업계 전문가는 “기본자본 자본증권은 배당가능이익 한도 내에서만 이자 지급이 가능해 배당 여력이 부족한 보험사는 발행 자체가 어렵다”며 “삼성생명, 삼성화재, 메리츠화재 등 이미 기본자본 지급여력비율이 높은 보험사들은 발행 유인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DB손보의 이번 발행은 선제적 기본자본 확충 성격도 있지만, 업계 최초로 기본자본 자본증권을 발행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