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업계가 금융당국의 방카슈랑스(은행 내 보험 판매) 규제 완화 추진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영향 분석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제도 변경이 속도전으로 흐를 경우 시장 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은행 중심 판매 구조가 굳어질 것이라는 분석으로 생보사의 위기감도 확산하고 있다.

3일 생명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방카슈랑스 채널에서 특정 생명보험사 판매 비중 상한을 현행 33%에서 이듬해 50%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19년간 유지돼온 방카슈랑스 규제를 완화해 소비자 선택권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올해는 혁신금융서비스 1년차로 생보사 판매 비중이 기존 25%에서 33%로 이미 1차 상향됐다. 당초 계획은 1년차 종료 시점에 영향 평가를 거쳐 2년차 적용 비중을 확정하는 방식이었다.

[이미지=챗GPT]

당국은 제도 시행 전 단계에서 시범 운영을 거쳐 규제 완화 효과를 검증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금융지주 내 계열사 쏠림 우려를 고려해 생보 기준 25%의 계열사 판매 비중 제한은 기존 조건대로 유지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그간 비합리적 규제로 인해 소비자가 우수한 상품을 선택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해왔다”며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하는 상황을 완화하고자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급속한 규제 완화가 보험사의 은행 종속을 심화시키고 법인보험대리점(GA) 업계에서 벌어졌던 출혈경쟁을 재현시킬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절차적 정당성과 시장 충격 최소화 방안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생보업계 관계자는 “지난 3분기까지 방카슈랑스 채널 수입보험료가 14조원을 넘어설 정도로 여전히 의존도가 높다”며 “당국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시기를 조정하지 않으면 시장 충격을 피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이어 “GA채널에서 벌어진 경쟁 심화로 인한 사업비 부담이 은행권에서도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다른 생보업계 관계자는 “당초 약속한 충분한 영향 평가 없이 판매 비중을 급히 확대하는 것은 절차적 정당성이 부족하다”며 “대다수 생보사가 반대하는데도 서둘러 강행하는 것은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진행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규제 완화의 근거로 내세운 소비자 편익이 오히려 침해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은행권의 영향력이 확대되면 수수료 인상 압박이 커지고 판매자 중심의 상품 공급이 늘면서 소비자 선택권이 좁아질 수 있다는 시각이다.

한 생보업계 관계자는 “은행 중심 판매 구조가 강화되면 대형사까지 협상력이 약화돼 수수료 인상 압박에 직면할 수 있다”며 “상품 개발 단계에서도 판매자가 손쉽게 판매할 수 있는 저난도 상품 위주로 기획돼 상품 다양성과 소비자 선택권이 축소될 위험이 있다”고 관측했다. 이어 “특히 최근 증권사의 주가연계증권(ELS) 부실 사태로 비이자수익이 감소한 은행들이 방카슈랑스에 집중하면 이런 상황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금융위는 생보업계의 우려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판매 비중을 확대하는 방안은 제도 확정이 아니라 혁신금융서비스로 시험 운영하는 단계”라며 “2년간 성과와 영향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시행령 개정 등 최종 결정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부작용이 확인될 경우 중단하거나 기존 규제로 되돌릴 수 있는 장치도 갖춰놓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