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씨는 암보험에 가입하기 위해 검색하던 중 구독자 9만명의 보험 유튜버 ‘닥터J(가명)’의 영상을 보게 됐다. 닥터J는 특정 보험사 상품을 소개하고 보험 정보를 전달하면서 영상과 소개란에 연락처와 SNS를 남겨 상담도 진행하고 있었다. 영상 어디에도 광고 심의를 받은 사실은 기재돼 있지 않았다. A씨가 상담을 신청하니 실제 상담은 대형 법인보험대리점(GA) 메가 소속 설계사 B씨가 진행했다. B씨는 A씨에게 가입설계서와 청약서도 작성해줬다.
금융감독원이 온라인 플랫폼에서 광고 심의 없이 보험 가입을 유도하는 행위가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금소법 시행 4년여만에 광고 위반으로 첫 제재가 내려질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금융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이찬진 신임 금감원장의 정책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는 평가다.
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심의 없이 이뤄진 유튜브 등 온라인 보험 모집 사례의 위법성 여부를 조사 중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유튜브를 통한 보험 유인 행위가 금소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살펴보고 있다”며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문제가 있다는 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다”고 밝혔다.
금소법상 업무광고는 금융상품 계약 체결을 유인하기 위해 소비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 관련 광고를 말한다. 설계사가 글이나 영상으로 재무설계 서비스를 소개하거나 상담 가능성을 알리며 연락처를 남기는 행위도 포함된다. 이런 광고는 반드시 심의를 거쳐야 한다. GA나 보험사 소속 설계사는 회사 준법감시인의 심의를, TV·유튜브 등은 보험협회 광고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판매 목적으로 보험상품의 정보를 제공·홍보하는 상품광고도 심의를 거쳐야 한다. GA가 일부 자체 심의권을 가진 업무광고와 달리 상품광고는 GA에 심의권이 없다. 상품광고 심의는 보험사 준법감시인이나 보험협회 광고심의위원회가 맡는다. 실무상 심의 통과시엔 ‘심의필’ 표시를 광고에 명시하도록 하고 있다.
닥터J가 업로드한 영상을 확인한 결과 영상 본문이나 소개란 어디에도 심의필 표시는 없었다. 닥터J는 최근 서울 구로구에 새 스튜디오를 열고 활동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삼성생명 전략영업본부와 GA사업부로부터 축하 화환을 받는 등 대형사들도 그 영향력을 인지하고 있는 분위기다.
[사진=‘닥터J(가명)’ 스튜디오]
삼성생명 전략영업본부, GA사업부로부터 받은 축하 화환이 창가에 배치되어 있다.
금감원은 닥터J와 유사한 사례를 금소법 제정 취지에 따라 엄격히 판단한다는 방침이다.
메가 측에 확인한 결과 닥터J는 설계사 코드가 등록돼 있지 않았다. 무자격자의 업무 광고로도 해석될 소지가 있다는 의미다.
보험 모집 관여 정도에 따라 수수료 부당 지급으로 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닥터J가 영상을 통해 고객을 유인하고 메가 등 GA로부터 고객 데이터베이스(DB) 제공 대가로 금전을 받았다면 해당 GA가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는 시각이다. 현행 금소법은 금융상품판매대리·중개업자가 자신의 대리·중개 업무를 제3자에게 맡기거나 이와 관련해 수수료·보수 등 대가를 지급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해당 행위는 보험 가입을 유도하는 것으로 보험광고 정의에 부합할 수 있다”며 “설계사 코드가 없는 유튜버가 고객 DB 제공 대가로 GA로부터 금전을 받았다면 수수료 부당 지급에 해당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종 결론은 모집 관여 정도와 상담 직접 진행 여부 등 여러 요소를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금소법은 2020년 제정돼 2021년 3월부터 시행됐다. 지금껏 보험업계에서 광고 규정 위반으로 제재가 내려진 사례는 없다. 이에 금소법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업계는 이찬진 신임 금감원장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이 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금융감독과 검사 전반에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밝혔다.
또 전일 열린 보험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도 방송매체와 온라인을 통한 보험광고가 소비자의 불안을 자극해 가입을 유도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하면서 광고 기획과 심의 단계에서 사전 통제를 강화해 달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