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성을 강점으로 내세운 텔레그램이 ‘디지털 치외법권’으로 변질하며 주식 리딩방 사기의 온상이 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속적으로 소비자들의 주의를 당부하고 있지만 위험 인식 수준은 여전히 낮다. 당국은 소비자 스스로 주의하는 것이 사실상 최선의 방어책이라고 조언한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텔레그램을 통한 주식 리딩방 운영이 여전히 활발한 것으로 파악됐다. 투자자 A씨는 ‘열흘 만에 수백 % 수익’이라는 광고 메시지를 보고 링크를 클릭했고, 이후 ‘하이에셋’이란 유사투자자문업자 명의로 운영되는 수십명 규모의 텔레그램 방에 입장했다. 방의 운영자는 자신을 금융전문가라고 소개한 B씨였다. 프로필 사진과 온라인 정보가 일치해 신뢰를 주었다. 그러나 B씨는 실제 금융전문가가 아닌 신분을 위장한 인물이었다.
A씨는 3개월간 방을 관찰하며 매일 올라오는 수백만~수천만원 규모의 수익 인증 게시물을 확인했다. 꾸준한 확인 뒤 신뢰가 쌓이자 개인 컨설팅 서비스를 신청했고, B씨는 1대1 채팅방을 열어 모의투자부터 시작하자고 안내했다. 실제 100만원을 송금해 수익금까지 돌려받자 A씨는 신뢰를 굳혔다. 하지만 유사투자자문업자가 1대1 채팅 상담을 제공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후 ‘투자일임계약’이 체결됐다. A씨는 안내에 따라 ‘공동신탁대행계좌’ 명목으로 1000만원을 송금했다. 송금은 시중은행 두 곳의 서로 다른 예금주 계좌로 나누어 이뤄졌다. 계약서에는 유사투자자문업체의 상호, 사업자등록번호, 주소, 직인이 기재돼 겉보기에 정식 계약처럼 보였다. 2주간 발생한 수익의 15%를 성과수수료로 받아간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B씨는 2주 동안 매일 수익률을 보고했지만 만기일이 되자 “출금을 위해 새 계좌로 추가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안내를 했다. 의심을 품은 A씨가 금융감독원에 신고한 결과 단체방의 수익 인증과 대화 내용은 모두 조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금융전문가 사칭 주식 리딩방 관련 자료. 위조된 사업자등록증과 신분증, 계약서, 텔레그램 단톡방 내역]
운영자와 참여자 대부분은 실제 투자자가 아닌 ‘바람잡이’였고 방 자체도 A씨를 속이기 위해 연출된 가짜였다. 운영자의 소재지와 연락처 역시 허위였고 방을 폐쇄하면 사실상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게 당국 설명이었다. 실제 계약서에 기재된 업체인 하이에셋 대표는 본인도 사칭당한 피해자라며 경찰에 진술했다고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텔레그램처럼 익명 기반으로 운영되는 리딩방은 피해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며 “제시되는 프로필, 사업자 정보, 신분증, 계약서, 일별 수익률 등은 얼마든지 위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운영자가 방을 폐쇄하면 추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높은 수익률 보장은 사기 신호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금감원 관계자는 “이런 종류의 사기에서는 입금된 투자금이 이미 인출돼 구제가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세금이나 수수료 명목으로 추가 입금을 요구받거나 국세청 조사를 이유로 위협받더라도 더 큰 피해를 막으려면 절대 추가 입금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금감원은 소비자 경보 발령 등 경각심 제고 홍보를 지속하고 있지만 소비자 피해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일각에선 익명성을 내세운 디지털 플랫폼에서의 금융 범죄는 사실상 추적이 불가능해 소비자 보호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