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금융감독원 원장은 취임사에서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을 대폭 강화하겠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취임사는 향후 비전과 목표를 밝히는 선언입니다. 다만 이 원장 취임 직후부터 금융당국은 조직개편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상황이죠.
소비자보호를 강조한 이 원장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당국의 혼란을 틈타 라이나생명의 변칙적인 영업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금감원이 과거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금기시했던 일부 담보에 대한 보장금액을 지나치게 높인 게 화근이죠.
라이나생명은 9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한시적으로 ‘바로 보장 용구와 제경이 플랜’을 판매한다고 설계사들에게 안내했죠. 대장용종과 대장제자리암의 보장금액을 한시적으로 대폭 높인 상품입니다. 용구는 ‘용종으로 구십만원’을 의미하며 제경이는 ‘제자리암과 경계성종양 보장 이천만원’의 앞 글자를 딴 거죠.
얼핏 보면 문제가 없습니다. 설계사는 판매 콘셉트를 잡기 쉽고, 소비자도 도움이 될만한 좋은 상품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적지 않은 문제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 과장광고...오인 판매의 씨앗
첫 번째는 소소한 문제입니다. 다만 감독당국은 이런 것까지 짚고 넘어가야 보험에 대한 신뢰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설계사 교육용 자료를 보면, ‘용종이 아니라 제자리암이라구요!? 90만원+2000만원 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보장에서는 이를 철저히 구분합니다. 대장내시경 시 용종(질병코드 K63)이 발견되면 90만원을 지급하죠. 당연합니다. 용종이 아닌 대장제자리암(D01)이면 2000만원을 줍니다. 각각 지급하는 게 아닙니다. 용종과 함께 제자리암 둘 다 나왔을 때 2000만원과 90만원 각각 보험금을 청구, 지급 받아 총 2090만원이 되는 거죠.
또 교육용 자료에는 ‘건강검진 시 떼어내기만 해도 2000만원 지급!’이라는 문구도 있네요. 이런 문구, 금감원이 세게 지적했던 적이 있죠. 바로 운전자보험 판매 과정에서 ‘의사 눈빛만 봐도 100만원 지급!’ 등의 표현을 했던 때입니다. 이후 금감원은 생명·손해보험협회와 공동으로 광고를 점검했죠. 보험사들은 ‘대장용종 제거 시, 제자리암 제거 시’ 등의 명확한 문구를 작성합니다. 오인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죠.
‘90만원+2000만원 드립니다’, ‘떼어내기만 해도 2000만원 지급!’ 이 두 문구 모두 상품 내용을 오인할 수 있는 표현으로 보이네요. 해당 상품을 판매하는 설계사가 오인하면, 소비자도 오인해서 가입하게 됩니다.
◆ 손실계약 가능성 높아
두 번째는 조금 더 무거운 문제입니다.
9월과 10월 한시적으로 ‘용구’, ‘제경이’ 보장금액을 높인 것은 이때 직장인들이 건강검진을 많이 하는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설계사들은 직장인에게 가입을 적극 권할 것입니다. 상품을 판매해야 수수료를 받을 수 있죠.
특히 건강검진을 앞두고 있으면 “고객님 이 상품 딱 15개월만 유지하다가 해지하셔도 됩니다. 매월 약 2만원 내고, 용종 생기면 90만원 받고 만약 제자리암이면 2000만원 받아요”라는 화법 등으로 설득하겠죠. 왜 15개월이냐고요? 설계사의 수수료 환수기간은 벗어나야죠.
보험사 입장에서는 30만원(2만원×15개월)의 수입보험료가 생깁니다. 이 과정에서 보험설계사에게 판매수수료를 지급해야죠. 30만원 중 극히 일부만 보험사 수익이 될 겁니다. 물론 단순화한 것입니다. 판매채널마다 수수료환수 기간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해당 상품으로 돈을 벌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같이 보장금액을 높였다는 것입니다. 손실계약일 것을 짐작하면서도 라이나생명은 왜 판촉 교육자료를 만들었을까요. 아마 향후 업셀링을 위해 고객DB를 확보하기 위해서이지 않을까요.
◆ 상품 그 자체로도 문제
세 번째는 영업방식의 문제가 아닌 상품의 문제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라이나생명은 상품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정말 영업방식만의 문제였다면, 지난해 금감원의 경영인정기보험에 대한 감독행정작용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참고로 감독행정작용은 감독당국이 직권으로 필요 지침을 제시하는 행위입니다.
정기보험은 ‘정해진 기간 동안 사망위험을 보장하는 상품’입니다. 가입 초기에 적립보험료가 많이 쌓이는 상품 특징을 활용, 해지환급금을 중소기업 대표자의 은퇴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죠. 이 상품을 법인사업자가 아닌 개인에게도 절세 효과가 있다고 불완전판매했던 것이 문제가 돼 감독행정작용을 제시하게 된 거죠.
보험사는 상품 기획 단계부터 보험설계사의 영업 콘셉트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죠. 경영인정기보험은 사망보장보다 적립보험료를 활용해 장기저축, 은퇴자금 등의 영업 콘셉트를 만든거죠. 연봉을 가장 많이 받는 상품개발자가 이런 고민도 안했다고요? 그럼 라이나생명 상품개발자가 무능하다는 의미겠죠. 정말 그런가 반문하고 싶네요.
◆ 시행세칙, 행정지도 위반 소지
네 번째 문제가 제일 심각합니다. 보험업감독업무시행세칙과 감독당국의 행정지도를 어긴 정황 때문이죠.
관련 세칙 보험상품심사기준에는 ‘보장하는 위험에 부합하는 보험기간, 보험금 지급기준, 보장금액한도 설정여부’를 판단하며 ‘보장하는 위험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실제 지출이 예상되는 평균 비용을 고려했는지 여부’ 등을 봐야 한다고 명시했죠.
지난해 11월 제정에는 ‘보험상품의 보장금액한도 산정 가이드라인’ 행정지도가 제정됐죠. 이 행정지도에는 ‘수술담보의 경우 통상적인 수술비 및 요양비 등을 고려하여 보장금액한도를 산정한다’고 명시했죠. 참고로 행정지도는 일정한 행위를 금지하는 권고입니다. [관련기사: 라이나생명, 금감원 혼란 틈타 보험업세칙·가이드라인 위반 영업]
대장내시경 시 용종 및 제자리암 제거술의 의료비는 통상 100만원 내외에 불과하죠. 그런데 2000만원을 지급한다는 건 ‘통상적’인 의료비를 지나치게 초과했다는 시각이죠.
◆ 용구와 제경이, 빠르게 제동 걸지 않는다면...
다수의 업계 관계자가 우려합니다. 라이나생명의 이 같은 일탈영업을 빨리 바로잡지 않으면, 다른 보험사들도 비슷한 수준으로 유사암 보험금을 높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지금 판매 시장은 보험사가 운영하는 전속채널보다 법인보험대리점(GA)의 영향이 더 큽니다. 이에 상품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데, 그 방법 중 가장 쉬운 게 보장금액을 한시적으로 대폭 높이는 것입니다.
라이나생명처럼 경쟁 보험사들도 유사암 관련 보장금액을 높이면 다시 영업시장은 혼탁해지고, 다수의 보험사가 관련 법령과 행정지도를 어기게 됩니다. 모두가 다 잘못한 것은 아무도 잘못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이 경우 감독당국의 제재가 아닌 자율협정 등으로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겠죠.
최근 삼성생명의 일탈회계가 업계 이슈입니다. 그러나 이 일탈회계는 소비자 피해로 이어지는데는 제한적입니다. 반면 라이나생명의 일탈영업은 순식간에 전체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 더 큰 문제입니다.
현재 금융당국의 조직개편으로 혼란스러운 틈에 변칙적인 일탈영업을 한 라이나생명, 금융당국은 최대한 빨리 제동을 걸어야 합니다. 소비자보호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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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AI 발전으로 정보를 쉽고 빠르게 검색하고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보험은 여전히 어렵고 해석은 부족합니다. 보험업계를 오래 취재하며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슈의 맥을 짚고 상품과 제도까지 쉽게 풀어가겠습니다. 독자의 눈높이에서 그러나 전문가의 시선으로 전하겠습니다. 보험EZ는 안내서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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