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생명보험사가 부실한 의료자문을 근거로 경계성 종양 보험금 지급을 지연해 논란이다. 가입자가 요청한 핵심 질문은 반영하지 않고, 성의 없는 자문으로 지급 여부를 미룬다는 비판이다. 본래 취지에서 변질된 의료자문 문제가 또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25일 뉴스포트 취재에 따르면 피보험자 B씨는 2019년과 올해 두 차례 팔 부위에 사구맥관종 수술을 받았다. 올해 5월 절제술과 조직검사에서는 0.7×0.3×0.2cm 크기의 종양이 확인됐다. 주치의는 조직검사상 사구맥관종으로 진단했지만, 다발성과 재발 가능성을 근거로 ‘사구맥관종증(D48)’으로 판정했다. D48은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상 경계성 종양에 해당한다.

[이미지 = 챗GPT]

B씨는 주치의 진단서를 제출하며 경계성 종양 진단비를 청구했다. 조직검사 결과만으로는 보험사가 양성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우려에 “수술 후 수년 내에 병변이 생긴다면 사구종이 다발성 종괴로 생긴 것을 의미한다”는 내용의 관련 논문도 제출했다. 양성 종양은 수술로 제거시 재발이 거의 없지만, 악성종양은 수술 후 재발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국립암센터 안내 자료도 첨부했다.

A보험사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주치의 소견을 다시 받아오라고 요구했다. 피보험자인 B씨 주치의는 “다발성 사구맥관종으로서 사구맥관종증으로 진단할 수 있으며, 다발성이고 재발 가능성이 있어 경계성 종양”이라고 명시한 별도 소견서를 발급했다. 하지만 A사는 이 소견마저 부정하고 의료자문을 강행했다. B씨가 의료자문을 해야되는 명확한 사유를 요청했지만 답변을 주지 않았다. 의료자문에 동의하지 않으면 청구를 반송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6월 “주치의 소견이 제출되면 의료자문 없이 심사할 수 있다”는 방침을 밝혔다. 다만 소견이 불분명하거나 의학적 근거가 부족한 경우에만 자문을 예외로 두었다. B씨 사례는 이미 재발 이력이 있고 주치의 소견도 분명한데 굳이 자문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게다가 B씨는 대법원 판례(2017다256828)와 금융감독원 분쟁조정례까지 첨부했다. 해당 판례는 “병리 전문의사의 병리조직검사 결과보고서를 토대로 임상의사가 진단서에 병명을 기재했다면 이는 보험약관상 병리학적 진단에 따른 진단확정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A보험사는 이 같은 근거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B씨가 요청한 핵심 질문이 자문 과정에서 사라진 것도 문제다. B씨는 “사구맥관종이 일정 기간 후 재발할 경우 다발성과 재발 가능성을 근거로 경계성 종양으로 진단할 수 있는지”를 자문에 포함해 줄 것을 요청했다. 병리학적 소견과 임상학적 소견이 엇갈린 상황에서 사실상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지만, 실제 자문 과정에서는 배제됐다.

자문의의 답변은 더 큰 논란을 낳았다. 자문의는 B씨의 질병을 ‘양성 신생물(D21)’로 분류하며, 사구맥관종증도 KCD상 양성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KCD에서 사구맥관종증은 ‘불확실한 또는 알려지지 않은 성격의 신생물’로 분류돼 경계성 종양에 해당한다.

또 자문의는 올해 조직검사에서 종양 크기가 명확히 기록돼 있음에도 “정확한 크기 측정이 기록돼 있지 않다”고 답변하는 등 기본적인 사실관계 확인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 보상 전문가는 “보험사가 의료자문 과정에서 계약자와 협의해야 할 절차를 지키지 않았고, 자문의 답변도 부실했다”며 “이런 결과를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지연하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불합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자문이 본래 취지를 벗어나 보험금 삭감 수단 등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보험사 의도에 좌우되는 편파적 자문으로는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A보험사 관계자는 “조직검사상으로는 양성이지만 주치의 임상 소견은 경계성으로 코드가 달라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황”이라며 “조사 과정에서 자문의의 근거와 가입자 측 의문도 함께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