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한 뇌혈관질환 사례에서 메리츠화재만 ‘두통과 어지러움’ 증상으로 판단하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해 논란이다. 메리츠화재는 의료자문 결과를 근거로 주치의 소견을 배제하고 부지급을 결정했다.
11일 뉴스포트 취재에 따르면 A씨(당시 만 53세)는 2022년 5월부터 10월 사이 삼성화재, 한화손해보험, 흥국화재, 롯데손해보험, MG손해보험, NH농협손해보험, 메리츠화재 등 7개사 건강보험에 가입했다. A씨는 가입 후 1년 남짓이 지난 2023년 12월 ‘상세불명의 뇌혈관질환(I67.9)’ 진단을 받고 메리츠화재를 제외한 6개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지급받았다. 반면 메리츠화재는 의료자문 결과를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메리츠화재는 강남의 한 상급종합병원에 의료자문을 의뢰해 영상을 분석한 결과 A씨의 양측 대뇌백질에서 퇴행성 백질변성을 시사하는 병변(파제카스 2등급)이 확인됐다고 회신, 부지급 근거를 들었다.
파제카스 척도는 백질변성의 심각도를 0~3등급으로 구분하는 체계다. 등급이 높을수록 뇌혈관 위험이 커진다. 통상 2등급이면 중등도 위험군에 해당하지만 자문의는 해당 병변을 노화에 따른 퇴행성 변화로 보고 신경학적 결손이 없어 뇌혈관질환 진단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
A씨는 메리츠화재 자문의가 파제카스 2등급 판정을 단순 퇴행성 변화로만 본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자문의 회신문에는 '40~50대에서는 1등급이 드물지 않고, 75세 이상에서는 2등급도 정상'이라고 명시됐다. 하지만 이 회신문 논리대로라면 75세보다 훨씬 젊은 50대 중반인 A씨가 2등급 판정을 받은 것은 단순 노화 외에 다른 원인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를 퇴행성 변화로만 판단한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게 A씨 비판이다.
A씨는 “다른 보험사들은 자문의 결과를 제출했음에도 보험금을 지급했지만, 메리츠화재만 파제카스 2등급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통상적인 질환이라며 지급을 거절했다”며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접수했으나 건수가 많아 1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검토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 손해사정사는 “메리츠화재는 파제카스 척도보다 신경학적 증상을 최우선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며 “최근 연구에 따르면 파제카스 2등급 이상의 백질병변은 미세한 뇌경색이 누적된 결과일 가능성도 있어 단일 기준으로 판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뇌졸중학회에 소개된 한 연구에 따르면 55세 이상 중증도 이상의 백질병변 환자들을 16주간 매주 MRI로 추적 관찰한 결과 신경학적 증상은 없었지만, 일부에서 작은 허혈성 병변이 발견됐다. 이 병변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기존 백질병변과 유사한 형태로 변했다. 이에 연구진은 백질병변이 통상적으로 알려진 만성적인 뇌혈류 저하뿐 아니라 미세 뇌경색의 누적 결과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했다.
메리츠화재는 약관에 따라 내부 검토와 외부 의료기관 동시 판정을 거쳐 심도 있게 검토했다는 입장이다.
메리츠화재 관계자는 “의무기록과 MRI 검사 결과를 관련 판례에 비춰 검토한 결과 퇴행성 변화로 판단했다”며 “약관 절차에 따라 진행한 제3의료기관 동시 판정에서도 동일한 결론이 나 부지급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A씨의 민원은 금융감독원 분쟁조정국에 접수된 상태다. 양측 의견 차이가 끝내 좁혀지지 않을 경우 제3자 의료진에게 판독을 의뢰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쌍방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다면 피보험자가 제3자인 상급종합병원 의사를 직접 선정하고, 비용은 보험사가 부담하는 조건으로 재자문을 받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재자문 결과가 피보험자에게 유리하다면 보험금 지급 지연에 따른 이자도 보험사가 지급해야 한다. 이미 다수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한 사실이 향후 분쟁 과정에서 피보험자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업계 전문가의 지배적인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