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AI 발전으로 정보를 쉽고 빠르게 검색하고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보험은 여전히 어렵고 해석은 부족합니다. 보험업계를 오래 취재하며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슈의 맥을 짚고 상품과 제도까지 쉽게 풀어가겠습니다. 독자의 눈높이에서 그러나 전문가의 시선으로 전하겠습니다. 보험EZ는 안내서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겠습니다.

최근 한 경제신문에서 신의료기술 도입으로 비급여의료가 많아지고, 비급여의료의 증가는 실손의료보험 누수로 연결된다는 이슈를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이 이슈는 해당 매체가 처음 제기한 것은 아닙니다. 신의료기술이 도입될 때마다 실손보험을 판매한 보험사는 진통을 겪어왔죠.

금융당국은 실손보험을 다시 개정한 5세대 실손보험을 올해 말 출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5세대 실손보험이 나오면, 의료과잉으로 인한 실손보험 누수 문제가 해결될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해결은 요원해 보입니다. 누수 금액은 점차 줄어들 수 있겠지만요. 왜 그런지 알아보겠습니다.

◆ 문제는 신의료기술 도입이 아냐

실손보험 상품명이 왜 실손보험일까요? 실제 손해액을 보상한다는 의미에서 실손보험입니다. 실손보험이 맨 처음 나왔을 때는 의료비 전액을 보험사가 부담했죠. 가입자가 약 1만원 내외의 보험료만 내면 100만원이든 1000만원이든 보험사가 대신 내줬습니다.

실손보험 이외에 다른 보험은 특정한 상황이 되었을 때만 보장을 합니다. 가령 암보험은 ‘암 확진 판정을 받았을 때’ 등으로 규정하죠. 이를 열거주의상품이라고 하죠. 약관에 명시한 질병이나 상해에 노출됐을 때만 보험사가 나서 비용을 지급한 거죠. 대부분의 보험상품이 열거주의입니다.

반면 실손보험은 완전 반대입니다. 포괄주의상품이죠. 약관에 ‘보장하지 않는 사항’에만 해당하지 않으면 보험금을 지급하죠. 이 ‘포괄주의’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겁니다. 신의료기술 도입이 문제의 핵심은 아니라는 거죠.


◆ 환자?

환자(患者)의 정의는 무엇일까요? 일반적인 대화에서 환자는 ‘병에 걸린 사람’ 또는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의학적으로 환자는 ‘의료법 제3조 또는 보건복지부 고시에 따라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거나 받으려는 자’로 정의할 수 있죠.

병에 걸리지 않았거나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데도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보험사는 이런 환자까지 인정하고 실손보험을 통해 보상을 해야 마땅할까요?

예를 들어 의료비를 전액 보장하는 1세대 실손보험에 가입한 75세의 노인인 ‘김실손 씨’가 있다고 가정하죠. 은퇴 후 집에서 소일거리를 하는 게 일상이죠. 나이가 드니 예전에 다쳤던 허리도 쑤시고, 몸에 기운도 없습니다. 그래서 물리치료를 받으러 하루는 정형외과, 하루는 한의원에 갑니다. 정형외과에선 도수치료, 한의원에서는 침과 뜸 시술을 받고 오는 것이 하루 루틴이죠. 병원에서 만나는 비슷한 나이의 친구들과 사는 얘기도 좀 하고요.

일반적인 기준에서 보면 이 75세의 노인인 김실손 씨는 환자입니다. 의료법에서도 환자에 해당하겠죠. 통증으로 병원에 갔고, 병원에서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으니까요. 그러나 보험사 입장에서는 환자가 아닐 수 있습니다. 치료의 필요성과 증상의 개선을 입증할 수 없을 수도 있거든요.

이를 확인하려면 치료가 무엇인지 알아야겠죠. 치료는 질병·부상·이상 상태를 개선하거나 회복시키기 위한 의학적 개입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질병·부상·이상 상태가 없이 그냥 노화에 의한 통증이라면 치료행위라고 할 수 없을 수 있죠. 또 질병이라면 증상의 개선이 있어야 합니다. 증상의 개선이 없이 지속해서 치료만 받는다면 이 또한 보험에서 정의하는 환자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죠.

◆ 과잉의료, 나에게 무슨 피해?

김실손 씨는 병원에 가는 것에 대해 아무런 부담이 없습니다. 이미 1세대 실손보험에 가입되어 있고, 보험료는 충분히 감당 가능한 정도거든요. 보험료만 부담하면 병원에서 얼마의 비용이 발생하든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1세대 실손보험의 경우 통원치료시 1일당 10만원까지 보상하는 상품이 많거든요. 마치 학생이 아침마다 등교를 하듯 김실손 씨도 병원에 다니는 겁니다. 자녀들은 김실손 씨가 이처럼 병원에 많이 가는 걸 굳이 말릴 이유가 없죠.

김실손 씨가 추가로 부담할 건 없습니다. 의료비를 청구하고 보험사에서 다시 받으면 되거든요. 다시 말해 추가 발생 비용이 없으니 병원에 가는 부담이 없는 셈이죠.

그런데 보험사 입장에선 어떨까요? 그리고 보건복지부는요? 아마 애가 탈 겁니다.

보험사는 지속적으로 지급보험금이 발생합니다. 이렇게 보험금이 지속적으로 나가면 손해율이 높아지게 되며, 보험사는 손해율을 낮추기 위해 신규 가입자의 보험료를 인상하게 됩니다. 즉 김실손 씨의 의료비를 새로 실손보험에 가입하는 사람이 부담하게 되는 셈이지요. 참고로 1세대 실손보험은 세만기 상품이 많습니다. 재갱신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김실손 씨는 나이에 따른 위험률 정도만 보험료가 오르게 되죠.

또 복지부에서 관리하는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이 줄어들게 됩니다. 국민건강보험은 우리 월급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가죠. 세금과 비슷한 성격을 가집니다. 복지부는 국민건강보험 재정 고갈을 막기 위해 국민건강보험료를 인상하게 됩니다. 즉 경제활동을 하는 수많은 사람이 김실손 씨 때문에 발생한 의료비를 떠받치고 있는 셈이죠.

다시 말해 김실손 씨가 하루 일과처럼 받는 과잉의료가 결국 나에게 추가 비용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거죠. 이런 이유로 보험사를 감독하는 금융당국은 물론 복지부도 실손보험 누수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할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