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도 안한 신입설계사 종신보험 무더기 계약?"...대형 생보사, 내부통제 '구멍'

지점장까지 경유·작성계약 가담...본사는 신입 설계사에 '책임 전가'

여지훈 승인 2023.08.09 11:27 | 최종 수정 2023.08.09 13:23 의견 0

국내 대형 생명보험사가 경유계약, 작성계약 등의 문제로 홍역을 치를 전망이다. 부평의 한 지점에서 팀장급 설계사가 수십 명의 신입 설계사 코드를 악용, 다수의 부당계약을 진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게다가 본사의 관리 부재로 야기된 사건에 대해 신입 설계사들에 책임을 전가하면서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킨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대형 생보사인 A보험사의 팀장급 설계사 B씨는 2021년부터 지난해에 걸쳐 다수의 경유계약과 작성계약을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유계약은 다른 설계사 명의만 빌려 체결한 계약을 말하며, 작성계약은 설계사가 타인 명의로 계약한 뒤 보험료를 대납하다가 환수기간이 끝나는 즉시 해지함으로써 부당 차액을 얻는 계약을 말한다. 두 계약 형태 모두 보험업법에서 금지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B씨는 고급 화장품과 금품 등을 유인책으로 30여명의 중년 여성에게 설계사 시험을 치르도록 권유했다. 이어 이들이 설계사코드를 받는 즉시 이들 코드로 본인의 지인들과 보험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체결한 계약은 종신보험으로 월납 보험료가 통상 100만원에서 200만원에 이르는 고액 건이 다수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신입 설계사가 달성하기엔 매우 높은 수준의 실적이란 게 업계의 지배적인 해석이다.

그럼에도 해당 지점은 물론 A보험사 본사에서조차 별다른 검증 없이 해당 계약들을 승인 처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보험료는 신입설계사가 보험판매를 대가로 받은 수당을 재원으로 B씨가 대납한 것으로 추정된다. B씨는 계약 체결이 전적으로 본인 덕분임을 강조하며 신입 설계사들에게 수당 전부를 토해낼 것을 요청했다. 즉 수당 대부분을 B씨가 편취한 것.

신입 설계사들로서는 본인이 영업하지 않았는데도 거액의 수당이 들어오자 겁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 이에 지급 받은 수당을 요청에 따라 B씨에게 전액 송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금액은 B씨를 관리하고 있는 지점장 C씨에게도 이체됐다. C씨가 한 신입 설계사로부터 이체받은 금액만 1500만원. 이는 C씨 역시 경유·작성계약에 가담, 수당을 편취했음을 방증한다는 게 업계의 해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신입 설계사들에 의해 고액 종신보험이 무더기로 체결됐음에도 검증 없이 결재했다는 것은 관리자로서 업무 태만"이라며 "C씨가 거액의 자금을 이체받았다는 사실은 애초에 C씨와 B씨가 한통속이었음을 방증한다"고 짚었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이상함을 느낀 다른 팀에서 본사 감사팀에 의혹을 제기하면서다.

본사에서 감사가 나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B씨는 신입 설계사들에게 감사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까지 구체적으로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A사 관계자는 "감사팀 조사결과 해당 계약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설계사 B씨를 해촉했고 관리자 C씨 역시 제재심의를 거쳐 징계조치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부당계약 건이 적발되자 B씨는 보험료 대납을 중단했고, 얼마 후 보험료 납입이 연체되면서 다수의 계약이 실효 처리됐다. A사는 실효 계약에 대한 환수를 진행, 계약서상 코드가 기입된 십수명의 설계사가 환수 대상이 됐다.

이미 받은 수당 전부를 B씨에게 송금한 설계사들에게 본사의 환수 요청에 대응할 자금이 있을 리 없었다. 드러난 청구금만 인당 1500만~3400만원 수준. 졸지에 수천만원의 채무를 진 신입 설계사들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A사 본사와 지점의 관리 부실로 야기된 문제에 대해 신입 설계사들에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A사가 신입 설계사를 상대로 기본 교육조차 제대로 진행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러한 주장이 힘을 받는 모양새다.

통상 설계사코드를 처음 받은 신입 설계사는 불완전판매나 수수료 규정 등에 관한 교육을 지점이나 본사로부터 받게끔 돼 있다. 이 과정에서 경유계약이나 작성계약의 위험성도 인지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다수 피해자들에 따르면 이들은 일부 상품 교육 외에 다른 교육은 받은 적이 없었다. 당초 설계사 등록을 권유한 것부터 정상적이지 않은 목적에서 비롯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처음 설계사 위촉시에만 해당 지점을 방문하거나 지점장 C씨의 얼굴조차 못 본 설계사도 적지 않았다. 설계사코드를 받은 이후 출근 횟수가 10회에 미치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보험전문 변호사는 "신입 설계사 다수가 고액의 종신보험을 모집했음에도 본사가 내부 감사를 진행하지 않은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며 "이는 사실상 관리감독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도 "본사 차원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적절히 구비됐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던 사건을 단순히 계약서상 코드에 근거해 신입 설계사들에게 책임지라고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A사 관계자는 "회사에서는 계약 체결의 대가로 수당을 지급한 설계사에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환수를 진행한 것"이라며 "원칙대로 하지 않을 경우 부도덕한 설계사들이 양산될 수 있기 때문에 처한 조치"라고 해명했다.

현재 일부 피해자는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한 상태다. 다만 점조직으로 구성된 설계사 특성상 피해자 간 응집이 원활하지 않아 소송이나 구제 등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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