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해상, 롯데손보 등 자산부채종합관리(ALM)가 부실한 보험사에서 빨간불이 켜졌다. 금융감독원이 보험사들과 자산·부채 듀레이션(가중평균만기)을 정밀하게 관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게 배경이다. 보험부채 할인율 현실화가 속도 조절 국면에 들어선 가운데 이를 규제 완화로 오해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게 당국의 입장이다.
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최근 보험사들과 ‘자산·부채 듀레이션 관리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시장금리 하락과 금융시장 불확실성 등에 대응하기 위해 각 보험사가 자산과 부채의 만기 구조를 관리해 ALM 체계를 강화하라는 취지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1일 열린 ‘보험산업 건전성 태스크포스(TF)’ 1차 회의에서 보험사의 건전성 연착륙을 위해 보험부채 할인율 현실화 속도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동시에 ALM 관리가 소홀해지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 금리 상황이 불확실한 가운데 할인율 현실화 속도 조절에 관한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이 과정이 자칫 보험사들에 규제 완화 신호로 잘못 전달돼 무분별한 영업 확대나 ALM 관리 소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협약은 이러한 부작용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며 “할인율 조정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속도를 늦추는 방안뿐 아니라 현행 기준을 유지하는 방안도 충분히 고려 가능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이번 협약으로 ALM 관리가 미흡한 보험사들에겐 리스크 관리가 더욱 시급한 과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상황에 따라 부채 듀레이션 관리를 위해 장기보장성보험 판매가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현대해상, 롯데손해보험, DB생명 등이 ALM 관리가 미흡한 보험사로 지목된다. 특히 현대해상은 올해 1분기 기준 듀레이션 갭이 -3.77년으로, 지난해 말(-2.55년)보다 더 확대됐다. 대형사 중 듀레이션 갭이 3년을 넘긴 사례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듀레이션 갭은 자산 듀레이션에서 부채 듀레이션을 뺀 값이다. 이 값이 마이너스일 경우 금리 하락시 부채 평가액이 자산보다 더 크게 늘어나 가용 자본이 줄어들고 자본적정성이 악화된다. 업계에서는 이 갭이 2년을 넘기면 사실상 ALM에 실패한 것으로 본다.
사실 이 같은 취약성은 보험사들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 후 보험계약마진(CSM)이 핵심 수익성 지표로 부상하면서 보험사들은 CSM 마진율이 높은 장기보장성보험 판매에 집중해 왔다. 이에 경영진 임기 내 실적을 끌어올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ALM이 흔들리고 부실 리스크가 누적됐다는 지적이다.
특히 보험의 초장기 구조를 고려할 때 단기 성과에 치중한 의사결정이 향후 십수년 뒤 회사의 재무건전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금리 하락 여파로 다수 보험사의 지급여력비율이 크게 악화된 점이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싣는다.
이번 협약에도 불구하고 자정작용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금융당국이 개별 보험사와 직접 경영개선협약을 체결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현행 보험업감독규정 7-16조(경영개선협약 체결 등)에 따르면 감독당국은 지급여력비율 악화 우려가 있거나 경영상 취약부문이 있다고 판단되는 보험사에 대해 개선 계획 또는 약정서 제출을 요구하거나, 경영개선협약을 체결할 수 있다.
일각에선 이번 협약이 보험사들에게 숨을 고를 기회를 제공했다는 측면에서 반기는 분위기다. 무리한 장기보험 영업 경쟁을 줄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일부 회사가 공격적으로 영업에 나서면 다른 회사들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구조라 경쟁이 과열되는 양상이 반복돼 왔다”며 “당국이 이번에 명확한 입장을 밝힌 만큼 당분간은 과열 경쟁이 다소 완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