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시연금(상속만기형) 관련 소송이 대법원 판결을 앞둔 가운데 생명보험사들이 관련 부채를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회계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마다 계정 처리와 공시 기준이 달라 투자자와 가입자의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3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다수의 생보사들이 즉시연금 소송과 관련해 3심 판결(KB라이프 등 일부 보험사는 2심 진행 중)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관련 부채에 대한 회계 처리는 사별로 제각각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분기 공시에 따르면 삼성생명과 KDB생명은 관련 충당부채로 각각 4040억원, 290억원을 계상했다. 교보생명은 기타부채 158억원에 향후 즉시연금 계약자에게 지급이 예상되는 금액을 포함했다고 기재했다.
KB라이프생명은 관련 금액을 소송충당부채 내에 포함했다고 공시했다. 지난 1분기 기준 KB라이프가 소송충당부채로 적립한 금액은 188억원이다.
미래에셋생명은 우발부채로 분류해 재무제표에 반영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금액과 계정은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언론 등을 통해 충당금 70억원을 적립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생명은 851억원의 우발부채가 있다고만 밝혔다. 확인 결과 해당 금액이 기타충당부채에 포함됐다고 한화생명 측은 답했다. 지난 1분기 별도 기준 기타충당부채 적립액은 409억원이다.
동양생명도 한화생명처럼 지급 예상 금액을 추정해 기타부채로 계상하고 있다고만 기재했다. 지난 1분기 동양생명의 기타부채는 192억원이다.
◆ ‘정보 신뢰성’ 도마 위...가입자·투자자 혼선
유사한 사안임에도 보험사마다 회계 처리와 공시 기준이 달라 투자자와 가입자 입장에선 비교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일부 보험사는 소멸시효가 지난 계약까지 충당금에 포함한 반면 일부는 이를 제외해 정보의 일관성과 신뢰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는 시각이다.
복수의 보험업계 관계자는 “당시 손익이 악화된 회사들은 패소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충당금 적립을 꺼리는 분위기였던 반면 손익에 여유가 있던 일부 회사들은 그 시점에 충당부채를 적극적으로 쌓자는 의견이 많았다”며 “소멸시효 경과 여부에 따른 회계 처리 방식도 회사마다 큰 차이를 보였다”고 말했다.
즉시연금은 가입자가 보험료 전액을 일시 납입하고 다음 달부터 매월 연금을 받는 구조의 상품이다. 과거 보험사들이 연금 지급액을 산정할 때 보험료에서 일정 금액을 공제했지만, 이를 약관에 명시하지 않거나 가입자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 2017년 연금 가입자들이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했고,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보험사에 미지급금을 지급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보험사들은 해당 내용이 산출방법서에 포함돼 있었다며 이를 약관의 일부라고 주장했고, 결국 분쟁은 대규모 소송으로 번져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1심 재판부는 대체로 “산출방법서만으로는 설명의무를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가입자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2심에선 판결이 엇갈렸다. 2021년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이 승소한 1심 판결에서는 “산출방법서도 약관의 일부”라는 재판부 판단이 있었고, 2022년에도 1심 판결을 뒤집고 삼성생명이 승소했다. 반면 미래에셋생명은 같은 해 2심에서 패소했다.
아직 관련 분쟁에서 대법원 판결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판결 결과에 따라 수천억원 규모의 미지급금 지급 여부가 달라질 수 있어 보험업계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다만 부채 계상 방식과 관련해서는 개별 회사의 회계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즉시연금은 회사마다 약관 구조와 계약 상황, 소멸시효 경과 여부 등이 다르다”며 “일률적 기준 적용은 어렵고 각사가 외부 감사인과 협의해 판단한 회계 처리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신한라이프와 NH농협생명은 즉시연금 관련 분쟁에서 사실상 벗어난 상태다. 신한라이프(당시 신한생명)는 금감원의 지급 권고를 수용해 미지급금을 전액 반환했고, NH농협생명은 약관에 연금 차감 조항을 명시해 1심에서 승소한 이후 별다른 소송에 휘말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회사는 관련 충당금도 따로 적립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