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이 과거 유배당보험 계약자들의 보험료로 사들인 계열사 주식을 그룹 지배구조 유지를 위해 사내에 유보하고 있다는 논란이 재점화됐다. ‘이익을 나누겠다’는 유배당 약속이 재무제표상 부채 항목에만 남아 사실상 형식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삼성화재가 자사주를 소각하면서 보험업법상 삼성생명의 자회사로 편입된 게 논란의 배경이다.
2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생명의 올해 1분기 말 최선추정부채(BEL) 기준 유배당보험계약이 전체 보험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4.0%에 달했다. 교보생명(28.0%)보다는 높지만 한화생명(40.2%)과는 유사한 수준이다. 유배당보험 비중이 높은 것은 과거 고금리 확정형 상품을 대거 판매했기 때문이다.
다만 유배당보험을 둘러싼 논란은 유독 삼성생명에만 집중돼 있다. 삼성생명이 계열사 지분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타사와 구별되는 결정적 차이다.
삼성생명은 지난 1957년부터 1992년까지 35년간 유배당보험을 판매했다. 유배당보험은 보험사가 보험료를 운용해 얻은 초과 이익을 보험계약자에게 배당금 형태로 돌려주는 구조다. 이 시기 조성된 보험료 상당액이 삼성전자와 삼성화재 등 그룹 내 계열사 주식 확보에 사용됐다.
현재 이들 주식은 삼성생명의 재무제표상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측정금융자산(FVOCI)으로 분류돼 있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삼성생명의 FVOCI 자산은 총 168조707억원이다. 이 중 약 20%인 32조5334억원이 주식이다. 같은 시점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보통주 5억390만4843주, 삼성화재 보통주 709만9088주를 보유했다.
삼성전자(5만7800원)와 삼성화재(35만7500원)의 보통주 종가를 기준으로 이 지분증권의 가치를 계산하면 삼성전자 29조1300억원, 삼성화재 2조5400억원이다. 사실상 주식 자산 대부분을 두 종목이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교보생명과 한화생명의 경우 FVOCI 자산 내 주식 자산 비중은 0.3%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들 주식 자산에서 발생한 이익을 유배당보험 계약자에게 되돌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삼성생명은 법적 의무를 준수해야 하는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곤 계열사 주식에 대한 매각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재용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 유지에 삼성생명이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연초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일부 매각하긴 했지만,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에 따른 금융산업구조개선법상 비금융계열사 보유 지분 한도를 준수하기 위한 조치였을 뿐이다.
물론 삼성생명은 계약자에게 돌려줘야 할 몫을 회계상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부채 항목으로 설정해두고 있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해당 금액은 8조6700억원에 달한다. 통상 보유 자산의 미실현손익은 자본에 계상되지만, 유배당보험 계약자 몫만큼은 채무 성격이 있다고 보고 부채로 별도로 분류한 것이다. 같은 시점 교보생명과 한화생명의 계약자지분조정 금액은 각각 947억원, 86억원에 그친다. 두 보험사는 전략적 목적의 주식 보유가 적어 관련 부담이 크지 않다.
주식을 매각하지 않으니 실현 이익이 없고, 이익이 없으니 계약자 배당도 이뤄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며 계약자 사망 등으로 계약이 종료되면 계약자지분조정 금액은 줄어들 전망이다. ‘유배당’이란 명칭이 무색하게도 보험계약자들이 낸 보험료가 오로지 삼성그룹 지배구조를 떠받치는 데 사용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지난 4월 자회사로 편입한 삼성화재 지분에 대해 FVOCI로 분류하는 대신 지분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이런 비판의 연장선에 있다. 지분법을 적용하면 삼성화재의 이익이 삼성생명에 귀속돼 당기순이익으로 인식된다. 즉 계약자 배당 재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앞서 삼성생명은 보험업법상 타회사 지분 보유 한도(15%)를 넘겨도 삼성화재에 대한 지분율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삼성화재의 자회사 편입을 신청해 금융위원회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자회사 편입에 따른 회계처리 방식이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유배당보험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등 계열사 주식을 매각해 이익이 발생하더라도 유배당보험 계약자가 무조건 배당받는 것은 아니다. 고금리 확정형 상품에서 손실을 우선 보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행 보험업법은 배당보험계약에서 손실 보전 후 잔여 이익이 있을 때만 배당을 허용하고 있다.
삼성생명의 전체 보험부채 중 30~40%는 여전히 고금리 확정형 상품인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서 발생한 손실을 메운 뒤에야 배당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에 상당한 규모의 이익이 나지 않는 이상 계약자가 배당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결국 유배당보험 계약자의 배당 권리가 재무제표상에만 존재할 뿐 현실에선 실현되지 않는 약속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상반기 결산을 앞두고 삼성화재 지분의 회계 처리 방식이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며 “지분법을 적용할 경우 유배당 계약자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삼성생명이 어떤 회계적 판단을 내릴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지분법 적용은 삼성그룹 전반의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인 만큼 실제 적용 가능성은 낮다는 게 공통된 시각”이라면서도 “이번 논란을 계기로 유배당보험 계약자 관련 이슈가 공론화된 점은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지분법 적용 여부는 감사인이 결정할 사안”이라며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