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이 유배당보험 계약자의 배당 가능성을 사실상 배제한 채 보험부채를 산정해왔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유배당보험 계약자의 보험료로 취득한 주식 자산에서 이익 실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아 보험부채는 줄이고 보험계약마진(CSM)은 부풀렸다는 비판이다. 반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외부 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도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2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유배당보험 계약에서 매년 1조원 내외의 손실을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자에게 6~7% 수준의 최저보증이율(이자)을 지급하고 있지만, 실제 자산운용 수익률은 3%에 불과해 역마진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 이러한 손실은 수십년간 지속될 것으로 가정, 보험부채에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향후 계약자에게 지급할 배당으로 인한 현금 유출분은 반영되지 않은 상태다.

삼성생명은 유배당보험 계약자에게 돌려줘야 할 몫을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부채 항목으로 계상하고 있다. 이 항목에는 기타포괄손익금융자산(FVOCI)으로 분류된 삼성전자·삼성화재 주식의 가치가 반영돼 있을 뿐 향후 배당 가능성은 고려되지 않았다.

유배당보험에서 매년 발생하는 막대한 손실로 인해 남는 이익이 없어 계약자에게 줄 배당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현행 보험업법은 배당보험계약에서 손실 보전 후 잔여 이익이 있을 때만 배당을 허용하고 있다.

[이미지=DALL·E]


지금까지는 이 같은 논리가 통했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삼성생명은 올해 초 삼성전자 일부 지분을 매각했다. 삼성전자가 밸류업의 일환으로 자사주를 소각하면서 금융산업구조개선법상 비금융계열사 지분 보유 한도를 맞추기 위한 조치였다.

현행 보험업감독규정에 따르면 FVOCI로 분류한 자산을 처분해 이익이 발생하면 이는 당기손익이 아닌 ‘계약자배당준비금적립전잉여금’에 가산해야 한다. 이 잉여금 중 유배당보험계약과 관련된 이익의 90% 이상은 계약자지분으로 분류된다. 이 계약자지분은 배당보험손실보전준비금 적립이나 계약자배당 재원 외의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다. 손실을 보전하고 남은 금액은 반드시 계약자 배당으로 귀속돼야 한다는 뜻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삼성화재에 대한 회계처리 방식을 두고도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삼성생명은 지난 4월 삼성화재를 자회사로 편입했다. 삼성화재가 자사주를 소각하면서 보험업법상 타회사 지분 보유한도(15%)를 넘기게 된 데 따른 조치다. 자회사로 편입시 해당 규정이 적용되지 않아 지분을 매각하지 않아도 된다.

이후 삼성화재에 대한 회계처리와 관련해 ‘지분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한국회계기준원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유의적 영향력 등을 고려할 때 지분법 적용이 타당하다는 시각이다. 지분법을 적용하면 삼성화재 순이익이 삼성생명의 당기순이익에 지분율만큼 반영된다. 이 역시 삼성생명의 실적 개선으로 이어져 유배당보험 계약자에게 돌아갈 재원으로 쓰일 수 있다.

즉 삼성전자 주식 매각과 삼성화재 지분법 회계처리 모두 삼성생명이 그간 손실을 이유로 미뤄온 계약자 배당을 현실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요소다.

가령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해 8000억원 이익이 실현되고, 삼성화재 순이익 2조원 가운데 3000억원이 지분법으로 반영되면 총 1조1000억원의 이익이 발생한다. 1조원 손실을 보전하고도 1000억원 이익이 남는다. 이 중 90%(900억원)는 계약자지분으로 산정되고, 다시 그 중 70%(630억원)는 계약자이익배당준비금으로 계상된다. 계약자이익배당준비금은 향후 5년 내에 계약자에 대한 배당 재원으로 사용해야 한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의 추가 매각은 법적 한도를 맞추기 위한 예외적 조치일 뿐이며, 삼성화재 지분 역시 지분법보다는 FVOCI 분류가 적절하다는 입장이다. 결국 초과이익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배당 지급을 전제로 한 현금 유출도 가정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이와 관련해 한국회계기준원은 최근 포럼을 열고 삼성생명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유지를 위해 회계처리를 하고 있다고 공개 비판했다. ‘이익을 공유하겠다’는 유배당보험의 약속과 달리 ‘이재용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떠받치는데 보험료를 쓸 뿐 보험계약자 이익은 뒷전이라는 지적이다. [관련 기사: [삼성생명 회계 논란]➀ “이익 나눈다더니”...삼성생명, 유배당 보험료로 지배구조 떠받치기 논란]

한 보험회계 전문가는 “삼성전자의 자사주 추가 소각이 예정된 데다 삼성화재에 지분법까지 적용하면 초과이익이 발생해 계약자 배당 재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며 “실제 매각 여부와 무관하게 매각 일정만 있어도 향후 현금 유출을 가정해 부채로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를 반영하지 않으면 보험부채는 과소계상되고 CSM은 과대계상된 셈”이라며 “삼성생명의 계약자지분조정 회계처리는 애초에 배당 지급 의지가 없었다는 방증”이라고 비판했다.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내달 중순 예정된 반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외부 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의 고심도 깊어지는 모습이다.

또 다른 회계 전문가는 “회계기준원이 삼성생명의 회계처리를 공식적으로 문제 삼았지만, 삼성생명이 국내 최대 그룹 소속인 만큼 삼일로서도 관계를 무시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지분법 적용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와 직접 연결되는 사안이라 현실적으로 간단치 않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한상 회계기준원 원장은 앞선 포럼에서 삼성생명의 계약자지분조정 회계처리는 다른 IFRS17 도입국에서도 수용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울러 오는 반기에도 계약자지분조정 일탈이 지속될 경우 기준서 문단을 개정해 보험부채의 측정 및 공시를 강제하겠다고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