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ALM(자산-부채종합관리) 관리가 부족한 보험사는 장기보험을 판매하지 못하게 하는 규제안을 내놨다. 업계는 과도한 규제라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ALM 관리를 통해 건전성이 높아야 장기보험을 판매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3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이세훈 금감원 원장대행은 최근 ‘보험회사 자산-부채 듀레이션 관리강화를 위한 업무협약’에 대해 전체 보험사 최고경영자(CEO)의 서명을 받았다. 이는 ALM 관리를 금감원이 사실상 강제하는 내용이라는 게 업계의 해석이다.
이번 업무협약은 지난 1일 보험산업 건전성 TF 제1차 회의의 주제인 ALM 관리 강화 등의 내용을 이행하기 위한 후속조치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업무협약서에 따르면 보험사는 금리 하락이나 금융시장 불확실성 증가 등에 대비해야 한다. 자산-부채 듀레이션 관리에 최대한 협력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듀레이션 갭을 늘리는 무분별한 장기보험 판매 경쟁을 자제해야 한다. 또 불건전 영업행위를 지양해야 한다.
아울러 듀레이션 갭을 분기별로 자체 점검하는 동시에 듀레이션 갭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다면 보험사 개별적으로 판매 전략을 조정해야 하는 등 ALM 관리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ALM이란 보험사 재무건전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유지하기 위한 핵심 전략이다. 자산(Asset)과 부채(Liability)의 만기, 금리, 통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수익성을 극대화하려는 관리(Management) 기법을 의미한다.
보험사는 고객으로부터 보험료를 먼저 받는다. 이후 길게는 20년 이상 오랜 시간 보험금 지급을 위해 보험료를 보유하게 된다. 이렇게 보유하는 보험료가 부채료 계상된다. 이 부채(지급 의무)에 맞춰 보험사의 자산(운용 자금)을 잘 배분해야 하는 게 ALM 관리의 핵심이다.
문제는 운용 자금을 투자해야 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부채는 30년을 초과하는 반면 보험사가 주로 투자하는 국고채는 길어야 20년 혹은 30년이다. 이에 보험사는 통상 부채의 듀레이션(잔존만기)가 자산 듀레이션보다 길다. 부채-자산 듀레이션 갭이 벌어질 경우 금리 민감도가 커진다. 금리 민감도가 커지면 시중금리가 변할 때 보험사의 부채나 자산도 급격히 바뀌게 된다. 즉 보험사의 건전성이 흔들릴 수 있다.
가령 어떤 보험사가 20년 후 고객에게 1억원의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계약(부채)를 보유하고 있다. 자산운용 수익률(예정이율)이 3%라고 가정하면 현재 약 5500만원만 있으면 20년 뒤 1억원을 돌려줄 수 있다. 그런데 부채(예정이율)은 3%인데 자산운용 수익률이 2%로 떨어지게 되면 현재 더 많은 돈이 있어야 향후 1억원을 지급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산운용 수익률이 하락하면 보험사의 부채는 증가하게 되는 셈이다. 부채가 증가하면 보험사의 건전성이 낮아진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ALM을 잘 관리하면 시중금리의 변동에도 건전성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며 “외부 변수(시중금리 변동)에 건전성이 유지되면 그만큼 세울 전략도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현재 금감원은 듀레이션 갭의 유의적 악화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금감원은 각 보험사로부터 의견을 수렴하고 있으며, 각사별 듀레이션 갭 관리 기준을 제출하도록 했다.
이번 업무협약에 CEO가 서명함에 따라 ALM 관리가 미흡한 보험사는 경영전략을 세우는데 제동이 걸렸다. 자산듀레이션을 늘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부채 듀레이션을 늘리기 위해 수익성이 높은 장기보험 판매를 못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즉 90세, 100세, 110세 만기 상품이 아닌 3년, 5년, 10년 만기 등의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세만기 상품이 아닌 연만기 상품을 판매하면 수익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만기가 긴 세만기 상품이 만기가 짧은 상품보다 CSM(보험계약마진) 확보가 유리하다.
CSM(Contractual Service Margin)은 보험 계약에서 보험사가 받게 된 기대 이익의 현재가치를 의미한다. 만기가 긴 상품은 가입자가 더 많은 보험료를 내게 된다. 즉 보험계약이라는 저금통에 더 많은 현금을 축적할 수 있다. 보험사는 이 CSM을 매년 일정부분 상각해 이익을 낸다. 만기가 짧은 상품은 보험사의 저금통에 적은 현금밖에 넣을 수 없다.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번 협약으로 보험사간 양극화가 더 심화될 수 있다”면서 “ALM 관리 인력을 더 많이 확보한 대형사는 수익성 높은 장기보험을 지속적으로 판매 더 성장하는 반면 중소사는 만기가 짧은 상품을 중심으로 판매해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