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동양생명의 신용정보법 위반 혐의에 대한 제재심의위원회 일정을 또다시 연기했다. 최대 수천억원에 이를 수 있는 과징금 부과 여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수년째 결정을 미뤄온 금감원의 미온적 태도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분위기다.

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 5월 제재심을 열고 동양생명에 대한 과징금 부과 여부를 논의했지만,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결정을 6월로 미뤘다. 하지만 지난달에도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이달로 제재심을 연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달 제재심 일정은 7일과 24일이다. 새 정부 출범 후 조직 개편과 인사 선임 이슈로 내부 분위기가 뒤숭숭한 상황을 감안하면 동양생명 안건은 이달 중순 이후인 24일 회의에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사진=동양생명]

업계에선 동양생명의 신용정보법 위반 관련 과징금 규모에 주목하고 있다. 다만 동양생명은 위법 사실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재심 결론은 이후 금융위원회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동양생명은 지난 2022년 금감원 검사에서 자회사인 법인보험대리점(GA)에 고객 동의 없이 개인신용정보를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행 신용정보법에 따르면 신용정보이용·제공자(보험사)가 신용정보주체(고객)의 동의 없이 개인신용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한 경우 매출액의 최대 3%까지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동양생명의 2021년 매출은 6조3500억원에 달한다. 다수 위반 건이 인정될 경우 양정 과정에서 감경되더라도 과징금 규모가 수천억원대에 이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제재가 수년째 지연되는 배경으로는 명확한 양정 기준의 부재가 지목되고 있다. 고의성 여부, 피해 규모, 시스템 결함 등을 종합해 제재 수위를 결정해야 하지만 관련 기준이 미비해 판단에 시간이 걸린다는 설명이다. 과징금 규모가 클 경우 회사에 막대한 재무 부담이 불가피한 만큼 당국 내부에서도 신중한 접근을 이어가는 분위기다.

최근 우리금융이 동양생명을 자회사로 편입한 상황에서 향후 과징금 리스크가 주식매매계약(SPA)상의 우발채무로 작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감원의 결정이 지연될수록 그룹 전반에 불확실성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각에선 금감원의 소극적 대응이 금융사에 ‘봐주기’ 신호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최근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만큼 더는 결정을 미루기보다 금융사에 명확한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

당국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과징금 규모가 워낙 크고 양정 기준도 뚜렷하지 않아 지금까지 결정을 미뤄온 것으로 안다”며 “다만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제재가 계속 늦어질 경우 금융사의 안일한 인식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우리금융이 자회사로 편입한 이상 내부통제와 리스크 관리를 중시하는 그룹 기조에 맞춰 이번 사안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이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