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판매를 위해 노력하는 보험설계사라면 판매수당 환수규정 변경에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금융당국은 최근 허위계약(작성계약) 근절을 위해 환수기간을 늘리는 등 규제를 강화하라고 주문, 보험사들은 환수기간을 기존 1년에서 2년으로 늘렸다. 이에 일각에서는 허위계약을 하지 않는 설계사도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등 볼멘소리가 나왔다.
지난 5월 말 뉴스포트를 비롯해 여러 매체에서 손해보험사들의 환수기간 연장 소식을 전했다. 지금까지 일명 '1200%룰'에 맞춰 수당 환수기간을 초년도(13개월차)로 제한했다면 이를 2차년도(25개월차)까지 늘린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른바 '2400%룰'인 셈. 다만 보험업감독규정을 개정하는 대신 금융당국 권고에 따라 보험사 자율로 시책 및 수수료 규정을 개정했다는 데 차이가 있었다.
이번 개정은 전적으로 허위계약 작성자를 겨냥했다는 게 당국 및 보험사의 설명이다. 허위 작성계약은 설계사가 타인 명의로 계약서를 작성한 뒤 보험료를 대납하다가 환수기간이 지나는 즉시 해지하는 계약 등을 말한다. 통상 일부 부도덕한 설계사가 진행한다.
계약 판매의 대가인 수당(수수료·시책)과 계약 해지로 인한 해약환급금의 합이 지출(납입보험료)을 초과하는 경우 발생하는 차익을 얻기 위해 이 같은 허위 작성계약을 한다. 즉 보험유지를 위해 낸 돈보다 받을 돈이 많아질 때 해지를 목적으로 가입한 보험이다.
그동안은 1년이 지나 받는 설계사 수당에 대한 별도의 환수 규정이 없었다. 1200%룰이 있었지만 장기 보장성보험 신계약 중 1년도 유지하지 않는 계약에 한해서만 차익을 환수했다. 이에 1년이 지나는 즉시 차익을 얻고 계약을 해지하는 '먹튀'가 가능했다.
개정안에 따라 앞으로는 이러한 차익거래가 원천 차단될 전망이다. 수당 환수기한인 2년 이후라도 납기 내라면 계약을 해지했을 때 차익 환수가 가능하기 때문. 당초 해지를 염두에 둔 허위계약 작성자의 유인 자체가 사라져 버리는 셈이다.
설계사들의 반발이 터져나온 건 이 대목에서다.
◆ 환수기준 강화...허위 작성계약 방지 위한 '핀셋 규제'
보험가입 초기 발생하는 차익은 보험사들의 판매경쟁 등 시장 논리에 따라 발생한다. 그 발생 자체는 허위 작성계약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또 계약이 해지되는 건 고객 변심이나 계약 리모델링 등 설계사가 통제할 수 없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납기 전반에 걸쳐 계약 유지 여부만으로 환수하겠다는 건 설계사 입장에서 부당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설계사 귀책이 아니더라도 설계사의 수당이 환수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는 의견이다.
한 보험설계사는 "지금도 고객 변심으로 발생하는 리스크를 설계사들이 전부 감수하고 있다"며 "납입 전 기간을 환수기간으로 잡겠다는 것은 대체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이는 '차익' 개념을 오해한 데서 기인한 것이다. 많은 이들이 간과한 부분은 개정안이 2년을 기점으로 환수기준을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정안은 가입 후 2년 이내 해지시 '총 납입보험료 < 수수료 + 시책비 + 해약환급금'인 경우에 환수한다. 하지만 2년 이후에 해지하면 환수기준은 '총 납입보험료 < 수수료 + 시책'일 경우 환수한다. 가입 후 2년이 지나면 환수규정에 해약환급금은 해당하지 않는 것.
이는 허위 작성계약의 해지가 납기 초에 몰린 데다 뒤로 갈수록 환급률이 커지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즉 2년 뒤에도 환급금을 포함해 환수기준을 적용할 경우 과도한 환수규정으로 자칫 다른 설계사들이 피해를 입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당초 금융당국이 제시했던 가이드라인도 이 점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언론 보도가 나간 뒤 설계사들 사이에서 혼란과 반발이 커지자 보험사들은 눈치를 보며 구체적인 개정안 공개를 미루는 분위기다.
물론 설계사들에 부정적 영향이 전혀 없지는 않다. 판매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보험사들이 수당을 줄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다만 추가 시책 지급 시점이 기존 13개월차에서 25개월차 이후로 미뤄질 수는 있다.
시책을 받는 시기가 늦춰지는 만큼 설계사는 더 큰 불확실성을 떠안아야 한다. 그럼에도 고객에 신뢰를 주고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해 온 설계사라면 기한의 연장이 크게 부담이 되진 않을 것으로 업계는 판단한다.
◆ 환수규정 강화...삼성생명 시책으로 촉발됐나?
이번 환수규정 개정은 보험사 간 과당경쟁의 결과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특히 삼성생명이 한화생명의 급격한 부상에 위협을 느껴 지난달 과도한 시책을 제시한 게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는 후문이다.
한 대형 GA 대표는 "지난달 삼성생명이 월납 보험료의 800%라는 과도한 시책을 제시한 적이 있었다"며 "이에 보험사 간 판매 경쟁이 심화하며 허위계약 유인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당국이 보험사에 차익거래 제한을 요청한 것도 그 직후의 일"이라며 "손보업계에서는 생보업계의 과당경쟁으로 인한 불똥이 보험업계 전반에 튀었다는 푸념이 나오는 형국"이라고 전했다.
금감원 관계자도 "그동안 대형 GA의 준법감시인들과 면담을 진행한 결과 보험사의 과도한 시책으로 불안해하는 이들이 많았다"며 "허위계약은 단기 차익만 챙기고 해지될 가능성이 크므로 유지율 관리에 애로가 크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허위계약이 줄어 유지율 관리가 제대로 되면 계약서비스마진(CSM)의 정확한 산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CSM은 보험사가 보유한 보험계약에서 미래에 얻을 것으로 추정되는 미실현 이익의 현재가치다. 올해부터 시행된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아래 보험사의 주요 수익지표로 꼽힌다. CSM 값은 유지율 등 계리적 가정에 큰 영향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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