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이 장기보험부채를 줄일 수 있는 새로운 계산 방식을 도입하려 하면서 소급 적용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세밀한 회계 기준 일부를 바꾸는 건 가능하지만, 그 효과를 과거 계약에까지 적용하면 소비자는 손해를 보고 보험사만 이익을 보는 구조가 될 수 있어서다.

1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그간 보험사들은 보험사고 발생 시점에 현금(보험금)이 유출되는 것으로 가정해 보험부채를 산정해왔다. 다만 최근 업계에선 실제 보험금 지급 시점을 기준으로 부채를 재측정하자는 논의가 이뤄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즉 보험사고 발생시점과 실제 보험금 지급시점이 다르니 이를 회계에 반영하자는 것.

[사진=언스플래시]

새 방식대로라면 보험부채는 작아진다. 보험금 지급은 청구와 손해사정 과정 등을 거치기 때문에 실제 현금 유출까지 수주에서 수개월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급 시점이 늦어질수록 현재가치로 환산한 보험부채 규모가 작아지는 원리다.

수십만 건의 장기보험 계약에 이 방식을 적용하면 보험사는 지급여력비율이 개선되고 재무건전성이 일부 개선된다. 보험부채 규모가 100조원 이상인 대형 보험사의 경우 평가액 차이가 조 단위에 이를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금리 하락으로 재무건전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보험사로선 부담을 일부 덜 수 있는 방법인 셈이다.

보험금 지급 시점에 맞춰 부채를 측정하는 것이 회계적으로 더 정교한 방식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이 구체적인 산정 방식을 정해두지 않고 원칙만 제시하고 있으므로 최선의 추정 방법으로 바꾸는 것이 더 합리적이란 시각이다.

문제는 이런 변경을 소급 적용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과거 방식이 오류에 해당한다면 소급 적용이 원칙이다. 소급 적용해 보험부채가 작아진다면 위험요율이 낮아진다. 이 경우 지금까지 고객들이 과도한 보험료를 납입했다는 문제가 생긴다. 보험사의 건전성은 개선되지만, 기존 가입자에게 불리하다는 점에서 소급 적용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나온다.

복수의 보험회계 전문가는 “IFRS17이 도입될 때부터 새 방식을 적용하지 않고 이제 와서 바꾸려는 시도는 회계오류 수정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현재로선 소급 적용 여부를 두고 찬반이 갈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보다 합리적인 기준으로 바꾸는 것은 필요하지만, 보험사가 그간 과다한 보험료를 받아온 격이 되므로 소급 적용은 민감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소급이 아닌 전진 적용을 택하면 변경 효과는 미래 계약에만 반영된다”며 “이 경우 보험부채 평가액이 줄어드는 효과가 제한적이므로 보험사로선 유인이 크지 않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