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 청구간소화 참여 안 해도 패널티 없다" 반쪽짜리 정책에 '난항'

핀테크업체, 현재 병·의원과 청구간소화 중계서비스 제공
금융위, "모든 보험사와 제휴한 보편화된 서비스 안착이 우선"

여지훈 승인 2024.09.09 17:09 의견 0

보험개발원이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한 시스템 구축에 난항을 겪는 모습이다. 병의원이 참여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패널티가 없어서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상당수 병의원이 중계기관으로 핀테크업체를 선택하는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다만 핀테크업체는 일부 보험사와만 제휴한 경우가 많아 소비자 편익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보험개발원을 중계기관(전송대행기관)으로 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대해 상급종합병원을 제외한 요양기관(병·의원·약국)의 참여가 저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참여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과태료 등 보험업법상 처벌 규정이 없는 게 주된 이유다.

[사진=언스플래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소비자 요청시 요양기관이 보험사에 전자적 방식으로 보험금 청구 서류를 전송토록 하는 서비스다. 내달 25일부터 병상 30개 이상 병원을 대상으로 시행된다. 의원과 약국도 내년 10월부터 시행 대상이다.

보험개발원은 지난달 30일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시스템 구축을 위한 4차 공고를 게시했다. 자체 EMR(전자의무기록) 시스템을 보유한 의료기관 또는 EMR 솔루션 제공업자가 대상이다. 오는 12일까지 접수를 받을 예정이지만 아직 참여 의향을 밝힌 병의원은 거의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불참시 제재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국회나 당국 모두 현재로선 다들 눈치만 보는 형국"이라고 짚었다. 이어 "의료업계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에서 그간 어렵게 거둔 성과마저 무위로 끝날 것을 우려하기 때문에 다들 신중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EMR업체도 참여 동기는 크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미 핀테크업체와 제휴해 고객사(병의원)에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

가령 의원급 의료기관을 고객사로 둔 유비케어는 핀테크업체인 지앤넷과 제휴해 소비자가 쉽게 실손보험을 청구할 수 있도록 전산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설명이다.

유비케어 관계자는 "병의원들이 반드시 보험개발원을 통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진행할 필요는 없다"면서 "지난 4월 실손간편서류발급 서비스를 출시한 뒤 지앤넷의 실손보험빠른청구 기능을 탑재한 플랫폼을 통해 자체적인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고 설명했다.

다른 EMR업체인 비트컴퓨터 관계자도 "이미 핀테크업체와 제휴한 상황에서 고객사에 새로운 전산 시스템을 연결하라고 요구하기도 난감한 상황"이라면서 "EMR업체로선 고객사가 원하는대로 시스템을 연동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언론상 보도와 달리 수익성이 부족해서 불참을 결정한 게 아니다"면서 "고객사와의 관계, 참여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객사가 원한다면 보험개발원과 연계하겠지만 아직 그런 상황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은 보험개발원과 핀테크업체, 투 트랙으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시행돼도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핀테크업체가 모든 보험사와 제휴한 것이 아니라면 비제휴 보험사 상품에 가입한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은 우려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보험개발원이 제공하는 서비스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핀테크업체라면 이용해도 문제가 없다"면서도 "보험업법상 모든 보험사와 제휴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병의원으로선 핀테크업체 서비스를 이용하더라도 추가로 보험개발원과 연계된 시스템을 들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러 서비스가 난립하는 것보다는 보편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우선해 안착시키는 게 국민 편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의료기관과 EMR업체의 참여 유도를 위해 지속해서 설득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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