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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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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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복싱 선수가 링 위에 올랐다. 한 선수는 방어만 하고 한 선수는 공격만 한다. 이런 불합리한 룰이 있는 경기다. 누가 이길까? 당연히 공격만 하는 선수가 이길 확률이 높다. 방어하는 선수가 엄청난 맷집으로 공격 선수의 체력이 다 소진될 때까지 버티는 게 아니라면. 하지만 1라운드가 끝나면 다시 2라운드가 시작될 것이 분명하다.
이런 비틀어진 링 위의 경기가 이날, 19일부터 시작된다.
공격만 하는 선수 입장에서는 오늘을 기다렸을 것이다. 반면 방어하는 선수 입장에서는 이날이 오지 않기를 바랐을 수도 있다.
네이버·카카오·토스(네카토)로 대표되는 빅테크 플랫폼이 보험 비교·추천하는 것이 바로 이 경기다. 네카토는 무조건 유리하다. 잘 싸우면 새로운 챔피언이 될 수도 있다. 보험사는 이 불합리한 방어전에 승리한다고 해도 얻는 것이 없다. 여기저기 상처가 날 것이며, 체력도 많이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다음 라운드에 임해야 한다.
나는 보험산업을 바라보는 제3자의 입장에서 오늘을 누구보다 기다려왔으며, 아울러 누구보다 이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지만 보험시장의 위축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2022년 기준 자동차보험 시장규모(원수보험료)는 20조7674억원. 이 중 온라인(CM)으로 가입하는 비중은 31.6%다. 보험료 성장을 감안하면 자동차보험 시장규모는 약 21조원이며 CM은 약 7000억원이다. 아울러 전체 가입대수는 약 2500만대다. 이를 감안하면 자동차보험 평균 보험료는 약 84만원이다.
네카토는 편의성이라는 전략으로 약 7000억원 규모의 CM 시장을 집중적으로 난타할 것이 분명하다. 가장 싼 상품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다. 네카토는 비교하는 조건으로 약 3%의 수수료를 받는다. 이에 맞서는 보험사의 방어전략은 약 3만원 더 저럼한 가격뿐이다.
만약 소비자가 네카토의 편의성으로 이동하면 판매시장의 변화 속도는 빨라질 것이 분명하다. 시작은 자동차보험이었지만 대면채널 중심이었던 장기보험까지 플랫폼으로 이동할 것이다. 시대적 흐름이다.
손가락 지문만으로 편리하게 보험에 가입, 보상까지 무리 없이 진행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면 소비자의 이동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편의성을 무기로 한 네카토가 시대적 흐름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보험사를 응원한다.
자동차보험이 플랫폼으로 넘어가면 보험 대면 시장은 급격히 무너질 것이다. 보험설계사는 더 편하고 더 저렴한 플랫폼과의 경쟁에서 이길 방법이 없다. 운전자보험, 여행자보험에 이어 단순화한 건강보험까지 플랫폼이 비교하면 끝이다.
대면시장의 붕괴는 가속화 될 것이며 전체 보험시장의 규모 위축으로 확산될 것이다. 아울러 40만 설계사의 일자리까지 급격히 축소시킬 것이다.
복싱은 링 위에서만 펼쳐지며 정해진 라운드 시간이 있다. 경기를 직접 뛰는 네카토와 보험사의 승패는 조만간 갈릴 것이다. 하지만 삶은 링 위에서만 펼쳐지지 않는다. 이 경기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많은 보험설계사들이 각자의 집에 돌아갔을 때에도, 나는 그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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