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생명 매각]③ 건전성만 문제 아닌데...'KDB생명의 깨진 유리창'

[기자수첩] 전문성 확보는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잡는 것부터

여지훈 승인 2023.07.10 06:00 의견 0

◆기사 게재 순서

① '보험금 지급도 못할 수준'...경과조치 배제시 건전성 뚝!
② "하자 있는 상품이 팔릴까요?" 10년째 재고...매각 가능성 낮아
③ 건전성만 문제 아닌데...'KDB생명의 깨진 유리창'

KDB생명의 재무제표를 분석, 취재하는 과정에서 '깨진 유리창 법칙'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유리창 일부가 깨진 자동차와 그렇지 않은 자동차를 거리에 방치했다. 며칠이 지나자 유리창 일부가 깨진 자동차는 크게 파손됐다. 반면 유리창이 깨지지 않은 자동차는 시간이 지나도 파손되지 않았다. 깨진 유리창, 즉 작은 문제가 더 큰 문제로 이어진 것이다.

KDB생명은 과거 유리창에 살짝 실금이 갔다. 이를 즉각 수리하지 않아 실금은 점점 커졌고 결국 유리창은 물론 다른 부분까지 파손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파손이 지속되고 있으니 매물로서의 매력도도 낮다는 게 업계의 평가일 것이다.

현재 KDB생명은 결손금 확대나 제무재표의 문제가 아니다. 인력공백이 문제다. 인력이 없으니 전문성까지 결여된 것이 문제다.

KDB생명의 인력난은 취재 중 마주친 '웃픈(웃기고도 슬픈)' 해프닝에서도 엿보였다. KDB생명의 경영공시를 살피던 중 오기(誤記)를 발견하면서 깨진 유리창이 명확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진=수정 전 KDB생명 경영공시에서 갈무리]
[사진=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KDB생명이 자사 홈페이지 경영공시실에 올린 올해 1분기 결손금은 마이너스 2869억원, 기타포괄손익누계액은 마이너스 1271억원이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기입된 재무상태표에는 해당 수치가 서로 뒤바뀌어 있었다. 즉 기타포괄손익누계액이 마이너스 2869억원, 결손금이 마이너스 1271억원이었던 것.

수정이 필수적이었다. 회사 측에 오기가 명시된 페이지를 알려주며 캡처본을 발송했다.

김희진 KDB생명 미디어팀 팀장의 매우 상세하면서도 친절한(?) 설명이 돌아왔다. "재무제표 제목에 보시면 '별도'와 '연결'이라고 표기돼 있는데요. 별도냐 연결이냐에 따라 반영되는 항목이 달라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차이입니다. 저희 실수나 오기가 아닌 회계상 재무제표 작성 원칙이라 다른 회사 재무제표도 확인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기자가 별도재무제표와 연결재무제표의 차이를 몰라서 질문을 던졌다는 지적이었다. 재차 오기가 아니냐는 질문에 돌아온 것은 "네! 당연히요. 계정 오기는 과거에도 없었습니다"라는 자신 있는 답변.

하지만 친절한 설명을 듣고 아무리 재무제표를 뜯어봐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KDB생명의 종속회사라고는 'KB북미대출전문투자형 사모부동산투자신탁제3호' 1개뿐이다. 해당 회사의 재무상태가 반영됐다고 해서 1600억원에 가까운 수치 차이가 발생하는 건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회계법인과 금감원 측에 문의하던 중 KDB생명 김 팀장으로부터 재차 연락이 왔다.

김 팀장은 "지적해주신 사항은 회사의 오기가 맞다"면서 "기자님이 계속 수치가 틀리다고 하니까 제가 계속 헷갈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숫자가 잘못 들어가 있는 게 아니라 항목의 이름이 위아래가 바뀐 상황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즉, 실제 사과는 1000원, 배는 1500원인데 가격을 잘못 기입한 것이 아니라 사과·배 항목을 바꿔 기입한 실수라는 것.

금융·경제 기사를 작성하는데 숫자를 잘못 표기하면 정말 큰 오보가 될 수 있다. 이에 숫자는 몇 번이고 검토한다. 기업의 재무제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재무제표에 표기된 숫자를 보고 투자를 판단하기도, 인수 여부가 결정되기도 한다.

현재 매각 절차를 밟는 만큼 기업 가치 평가의 근간이 될 회계자료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우려에 KDB생명 김 팀장은 "해당 공시를 구성하고 올릴 때 회계팀 외에 여러 팀이 소관하다 보니 착오가 발생한 것뿐"이라며 "기업 가치를 여러 기관이 평가할 텐데 항목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 기관들이 모르진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이런 오기가 기업 가치 평가에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상당히 기시감이 느껴지는 답변이었다. 기업 가치 평가 주체가 알아서 잘 할 것이라는 안일함은 회사를 내놓았으니 인수자가 알아서 개선하라는 산업은행 측 대응과 닮아 있었다. 발견된 미진함을 개선하기보다는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성향이 그룹 전반에 배어 있다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었다.

실수를 인정하고, 책임을 지며 이를 바로잡는 것부터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유리창에 난 작은 실금을 수리하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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