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이트 한도 상향]上 "보험 가입 후 받은 사은품으로 당근하세요"

불완전판매 증가 예상...탁상행정이란 비판도 거세

여지훈 승인 2023.07.03 10:41 | 최종 수정 2023.07.03 11:15 의견 0

"태아보험 사은품으로 유모차 지급은 당연해지겠네."
"초회보험료 물품 대납이 생활화 되겠네요."
"당근마켓에서 사은품 파는 가입자가 늘겠어요."

보험설계사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단톡방(단체 채팅방)에서 나온 자조적인 농담이다. 금융당국이 보험 판매시 설계사가 계약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특별이익(리베이트) 한도를 기존 3만원에서 20만원으로 상향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계약을 빌미로 고액 사은품을 요구하는 보험가입자가 급증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대부분이다. 중고마켓에서 사은품을 되파는 행태가 만연해질 것이란 염려도 나온다.

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7일 보험업법 시행령 제46조(특별이익의 제공 금지) 개정안을 공포, 이달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설계사가 보험계약 체결·모집시 초년도 납입 보험료의 10%와 20만원(소비자가격) 중 적은 금액에 상응하는 물품을 계약자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이는 초년도 납입 보험료의 10%와 3만원 중 적은 금액에 상응하는 물품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한 기존 규제를 크게 완화한 것이다.

[사진=네이버 검색]

◆"고급 유모차 주세요"...커진 리베이트 부담에 '불판' 우려까지

리베이트 한도액 상한 조정에 대한 설계사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영업에 큰 도움은 되지 않고, 가입을 대가로 요구하는 사은품 액수만 커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현재도 어린이보험 가입을 대가로 '유모차', '카시트' 등을 요구하는 가입자가 많다. 일부 맘카페 등에서는 가입자가 어린이보험 사은품을 비교하는 일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 보험설계사는 "어린이보험 시장은 더 이상 컨설팅의 영역이 아니라 유모차의 영역이라고 할 정도로 변질됐다"며 "사은품으로 무엇을 주느냐에 따라 보험계약 체결 여부가 결정된다"고 토로했다.

어린이보험뿐만이 아니다. 설계사들은 보험 가입의 대가로 물품이나 현금을 요구하는 고객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보험 가입시 제공하는 특별이익 한도의 상향이 판매 촉진보다는 부작용을 키울 것이란 시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

금융위는 보험상품과 결합된 물품 제공으로 보험위험을 줄이고 소비자 혜택이 증진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20만원까지 제공되는 물품은 보험계약에서 보장하는 위험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한정한다. 주택화재보험 가입자에게는 가스누출이나 화재발생을 감지할 수 있는 제품을, 펫보험 가입자에게는 구충제나 예방접종 등의 물품을 제공하는 식이다.

현장에서는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설계사가 고객에게 적합하지 않지만 더 많은 수당을 지급받는 상품 가입을 권유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특별이익 제공으로 줄어드는 수익을 보존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불완전판매를 줄이기 위해 금융당국이 추구해온 정책 방향과는 정반대되는 현상이 벌어질 것이란 지적이다.

한 설계사는 "고객이 요구하는 사은품을 지급하지 않으면 다른 설계사를 찾는다"며 "결국 설계사로서는 자비를 들여서라도 주지 않을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이 경우 지출이 커지게 되므로 고객에게 적합한 보험상품보다는 설계사 본인에게 유리한 상품 위주로 판매할 유인이 커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사은품 되파는 가입자 '모럴해저드'도 걱정

사은품을 받은 고객이 이를 당근마켓 등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되파는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도 예상되는 문젯거리 중 하나다.

지난 2021년 일부 실손의료보험 가입자가 의료기기인 MD크림(점착성투명창상피복제)을 처방받아 실손처리한 뒤 이를 당근마켓 등에서 판매한 사례가 언론에 보도, 사회적 문제로까지 이슈가 확산됐다. 보험금으로 받은 의료기기를 직접 사용하는 대신 되팔아 부당이득을 챙긴 셈. 이러한 일부 가입자의 모럴해저드로 인해 전반적인 실손의료보험 보험료가 상승하는 결과가 초래돼 논란이 일었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 관계자는 "이번 시행령 개정은 소비자의 보험위험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3만원이란 가격 한도가 정해진 게 워낙 오래전이라 그간 반영되지 못한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도한 마케팅이나 가입자의 사은품 되팔기와 관련해서는 향후 검사, 감독으로 대응해야 할 부분"이라고 밝혔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도 "보험사 역시 보험위험이 줄어 지급보험금이 감소되는 효과를 기대할 것"이라며 "단순히 사은품 제공으로 끝내기보다는 고객의 실사용을 유도해 소비패턴의 변화가 있게끔 적절한 자구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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