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설계사 수는 20만명 줄어들 수 있습니다.”
네이버, 카카오 등 빅테크 회사의 보험산업 진출에 대한 영향을 묻는 질문에 한 보험 고위 관계자의 대답이다. 빅테크가 보험판매 시장의 위축을 가속화 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특히 최근 논의되고 있는 판매수수료 분급 강화['설계사 이직 줄지만 산업도 위축'...판매수수료 분급 강화 명과 암]와 함께 빅테크까지 보험산업에 진입하면, 설계사 시장의 위축은 더욱 빨라질 것이라는 게 이 고위 관계자의 예측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8월 23일 금융규제혁신회의를 개최하고 온라인 플랫폼의 보험상품취급시범운영 방안을 발표, 플랫폼 회사의 보험 산업 진출을 허용했다. 이달(10월)부터 시스템이 구축된 플랫폼은 보험상품을 비교, 추천할 수 있다.
플랫폼에서 보험상품을 정량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되면, 설계사의 강점은 크게 낮아질 수밖에 없다. 보험소비자 입장에서 설계사를 만나는 가장 큰 이유는 본인에게 맞는 상품 중 가장 좋은 것을 추천받기 위해서다. 플랫폼이 비교·추천하는 역할을 한다면 설계사를 만나 상담을 받아야 할 큰 이유가 사라지는 셈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소비자는 설계사를 만나 상담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핸드폰 등 온라인으로 간단하게 보험상품의 장·단점을 비교해볼 수 있다. 가입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다면 플랫폼이 추천한 상품을 판매하는 보험사로 이동, 가입하면 된다.
MZ세대(2030세대)는 온라인에 익숙하다. 검색어를 치면 가격순, 별점순 등으로 상품을 비교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또 음식 등은 리뷰 등을 통해 간접경험을 중시한다. 반면 MZ세대는 구매력이 높지 않다. 이에 하나의 상품을 구매해도 실패하지 않기를 원한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MZ세대는 보험설계사를 만나 상담하는 것을 꺼린다. 보험산업 신뢰도가 높지 않은 분위기에서 자칫 잘못된 상담으로 필요 없는 상품에 가입하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온라인으로 보험에 잘못된 리뷰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보험에 잘 가입한 리뷰를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다.
MZ세대가 플랫폼으로 대변되는 온라인에 집착하고, 대면을 꺼리는 배경이다. 특히 정보의 비대칭이 심하다면 더 리뷰를 찾아보게 된다. 객관적인 리뷰는 빅테크 플랫폼이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다.
플랫폼의 보험산업 진출 초기에는 비교·추천만 가능하다. 그러나 보험상품의 객관적 비교가 가능해져 정보의 비대칭이 완화되고 리뷰가 쌓여 신뢰도가 높아진다면, 소비자는 플랫폼에서 직접 가입까지 요구할 수 있다.
요컨대 플랫폼의 보험산업 진출 초기에는 자동차보험이나 실손의료보험 등 비교가 쉬운 상품부터 활성화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 이후에는 휴대폰파손보험 등 생활밀착형 상품으로 확대된다. 머지않아 암보험·건강보험 등 장기보험으로까지 비교·추천과 함께 가입까지 활성화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 과정에서 플랫폼보다 상품 비교·분석 능력이 높지 않거나 고객의 재무컨설팅 능력이 떨어지는 설계사는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 GA는 결사 반대, 보험사는 중립
보험 대면판매 비중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는 법인보험판매대리점(GA)는 플랫폼의 진출을 강력히 반대한다. GA는 매출의 90% 이상이 판매에서 나온다. 이에 설계사 조직 규모가 GA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계사 시장의 위축은 곧 GA의 위축을 의미한다. 이에 설계사 시장 위축을 가속화할 플랫폼 진출을 저지할 수밖에 없다.
반면 보험사는 조금 다르다. 플랫폼의 진출을 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보험산업은 성장곡선을 지나 성숙과정에 있다. 가구당 보험가입률이 98%인 상황에서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기가 쉽지 않다. 신규이익을 내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비용 축소도 필요하다. 보험사는 플랫폼이 활성화되면 대면채널을 유지하기 위한 사업비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최근 제판분리(보험 상품 제조와 판매 분리)가 활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업비는 보험사가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 소요되는 비용이다. 사업비 중 가장 많은 비용을 차지하는 것은 설계사의 판매수수료와 설계사 조직을 운영하기 위한 비용이다. 통상 매출액(수입보험료) 100원 중 20원 내외가 사업비이며 20원 중 15원 내외가 설계사의 판매수수료다. 플랫폼 활성화는 이런 판매수수료를 감축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물론 보험사도 설계사 규모가 줄어들면 매출이 줄어든다. 하지만 매출감소보다 비용 감소 폭이 더 커질 수 있다는 판단인 셈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GA는 설계사 중심의 대면채널을 급격히 위축시킬 수 있는 플랫폼의 진출을 반대할 수밖에 없다”며 “플랫폼은 결국 고비용의 보험상품 유통시장을 급격히 변화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반면 보험사는 이런 변화에서 사업비 축소를 기대할 수 있다”며 “사업비 축소는 곧 보험사의 이익 확대로 이어진다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보험대리점협회는 5일 온라인플랫폼 보험진출 저지와 보험영업인 생존권 사수를 위해 광화문에서 2차 결의대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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