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익 상품으로 여겨져온 건강보험이 재보험 시장에서 ‘현실 검증대’에 올랐다. 주요 재보험사들이 최근 국내 보험사들의 건강보험 인수에 잇따라 보수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다. 낙관적인 손해율 가정과 법인보험대리점(GA) 중심의 과열 영업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3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최근 재보험사들이 보험사가 판매하는 건강보험 인수를 잇따라 거절하고 잇는 것으로 전해졌다. IFRS17에서 보험사들이 ‘고수익 상품’으로 평가해온 상품을 재보험사들이 ‘고위험 상품’으로 분류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재보험 출재가 막히면 보험사들은 신계약 확대에 제동이 걸리고 위험 분산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재보험사는 보험사가 가입하는 보험사다.

[이미지=챗GPT]

한 재보험사 고위관계자는 “손해율 가정을 두고 보험사와 재보험사 간 시각차가 상당하다”며 “특히 건강보험은 손해율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설정돼 있어 인수를 꺼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다른 재보험사 관계자도 “종목별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재보험사들이 비슷한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업계 전반이 보수적 기조로 전환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IFRS17 체제에서 보험계약의 수익성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는 보험계약마진(CSM)이다. 문제는 손해율 가정이 조금만 달라져도 CSM 규모가 크게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손해율 가정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고위험 상품이 고수익 상품으로 둔갑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보험사들이 자초한 것이란 시각도 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경쟁적으로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실제보다 낮은 손해율을 적용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며 “결국 재보험 시장에서 그 가정이 검증을 받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GA채널 중심의 판매 구조도 리스크 요인으로 꼽힌다. GA를 통해 판매된 건강보험은 손해율이 상대적으로 높아 재보험사들이 리스크 회피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한 보험사 고위 관계자는 “같은 상품이라도 전속채널보다 GA채널의 손해율이 높은 경향이 있다”며 “GA채널에서는 역선택 등 다양한 문제가 자주 발생해 실제 손해율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보험사들이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이유는 손해율 가정뿐 아니라 채널 리스크까지 반영한 결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높은 재보험료를 부담하면서까지 재보험에 가입하려는 보험사들의 논리가 모순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재보험사 관계자는 “높은 재보험료를 감수하면서까지 재보험을 강행할 경우 상품개발 부서와 리스크관리 부서 간 의견이 충돌할 것”이라며 “CSM이 많이 나온다고 판단해 상품을 출시했는데 다시 높은 보험료를 내며 재보험에 가입하려 한다면 내부적으로 논리적 모순이 생기는 셈”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