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차례 매각에 실패하며 표류해온 KDB생명에 변화의 기류가 감지된다. 산업은행 역사상 첫 내부 출신 회장이 선임되면서 후임 사장 인선과 정상화 작업에도 새로운 동력이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박상진 신임 산업은행 회장이 전날 공식 취임했다. 박 회장은 취임식에서 “미래성장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수단으로서 금융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미지=챗GPT]

박 회장은 1990년 산은에 입행해 35년간 기업구조조정과 법무 업무를 맡아온 내부 출신 인사다. 1990년대 대우중공업과 대우자동차 구조조정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하며 구조조정과 금융법 전문가로 평가받았다. 이후 산은 법무실장과 준법감시인을 거쳐 직전에는 서부광역철도 부사장을 역임했다.

산은 회장이 취임하면서 시장의 관심은 KDB생명으로 쏠리고 있다. 대주주가 산은인 만큼 사장 선임에 미치는 영향력도 절대적이다.

임승태 사장은 이미 6개월 전 임기가 만료됐지만 후임 인선이 지연되며 자리를 지켜왔다. 지난 2월 취임한 김병철 수석부사장이 사실상 경영 전반을 총괄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 수석부사장은 ING생명, AIA생명, 푸본현대생명 등에서 오랜 기간 영업 부문을 이끈 ‘영업통’이다. 실무 감각과 조직 운영 능력을 인정받아 산은의 제안을 받고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KDB생명은 그간 산은 체제 아래서 ‘낙하산 인사’ 논란에 시달려왔다. 금융 관료나 보험업 외부 인사가 사장직을 맡으면서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반복됐고, 유상증자 자금을 비효율적으로 운용했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장기상품인 보험의 특성을 반영한 전략보다는 단기 성과에 치중해 장기적 성장을 뒷받침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지난 상반기 말 기준 KDB생명의 자본총계는 마이너스(–)1242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시장금리와 할인율 하락에 따른 보험부채 평가손실 급증이 주된 원인이다. 영업이익이 악화되며 160억원 규모의 결손금도 발생했다. 상반기 영업손실은 –40억원이다. 업계에서는 산업은행이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와 함께 영업 재정비를 통한 이익 체력 회복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오랜 영업 경험을 지닌 김 수석부사장에게 경영 전반을 맡긴 것은 산은이 실질적인 정상화를 위해 조직 운영과 영업 역량 강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산은 회장 인사가 KDB생명에도 전환점이 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구조조정 경험이 풍부한 박 회장이 경영 안정화와 매각 추진에 적합한 인사를 배치할 것이란 기대다. 동시에 산은이 정치적 안배에 따른 낙하산 인사 관행에서 벗어나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인물을 선택할 수 있을지에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박상진 회장이 내부 출신이라는 점은 산은이 경영 판단에서 현실성과 전문성을 중시하겠다는 신호일 수 있다”며 “경영 정상화가 시급한 KDB생명 사장 인선에서도 정치적 고려보다는 보험업 전문성과 실행력을 갖춘 인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