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이 적용 중인 ‘계약자지분조정 일탈회계’와 관련해 한국회계기준원의 적용의견서 발표가 당초 계획보다 늦춰질 전망이다. 당초 10월 중순 발표가 예정됐으나 국정감사 일정을 고려해 11월로 연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1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한국회계기준원은 국정감사 종료 후 삼성생명 계약자지분조정 회계처리 논란에 대한 적용의견서를 내놓을 예정이다. 이해당사자 간 대립이 첨예한 사안인 만큼 발표 시점을 국정감사 기간을 피해 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부담이 큰 삼성 측 요청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번 의견서는 삼성생명의 회계처리를 둘러싼 논란으로 인한 시장 혼란을 정리하고, 국제회계기준(IFRS)에 부합하는 해석 기준을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다. 기준원은 특히 일탈회계가 허용되더라도 IFRS 개념체계의 틀을 벗어나선 안 된다는 원칙을 명확히 할 방침이다.
쟁점의 핵심은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제1001호(재무제표 표시) 문단 19다.
해당 문단은 ‘극히 드문 상황’에서 K-IFRS 요구가 개념체계상 재무제표 목적과 충돌해 이용자에게 오해를 줄 수 있다고 경영진이 판단하고, 감독체계가 이를 금지하지 않는 경우 회계기준 요구를 따르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대부분의 경우에는 기준서를 따라야 하지만 기준서 적용이 재무제표 이용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예외 상황에선 일탈을 허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삼성생명은 과거 판매한 유배당보험 계약자에게 돌려줄 몫을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부채 항목으로 설정해 왔다. 과거 유배당보험 계약자로부터 받은 보험료로 삼성전자 주식 등을 매입하고 주식 매각을 통해 이익이 발생하면 이를 계약자에게 배당으로 돌려주겠다는 취지에서 별도로 설정한 항목이다. 올 상반기 말 기준 약 9조원 규모다.
문제는 삼성생명이 보유 중인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할 의도가 없다는 점이다. 삼성생명은 그간 관련 매각 계획이 없다고 공언해왔다.
2023년부터 적용된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에 따르면 보험부채는 미래 현금흐름을 추정해 현재가치로 평가해야 한다. 이 기준대로라면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할 의사가 없는 삼성생명은 실현이익이 발생하지 않아 계약자 배당은 ‘제로(0)’가 되고, 관련 부채도 ‘0’으로 평가돼야 한다. 재무제표에 잡혀 있는 9조원의 부채가 사라지고 자본이 그만큼 늘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자본을 늘리기보다 과거와 동일하게 부채를 유지하는 선택을 했다. 수조원 규모의 부채가 한 번에 사라질 경우 정보이용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개념체계의 목적이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상황이 ‘극히 드문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 일탈회계를 적용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재무건전성과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부채를 줄이는 행태와는 반대되는 행보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매각 계획이 수립되지 않아 IFRS17 도입 전에 자본으로 분류하려 했다”면서도 “과거부터 부채 항목으로 유지해온 계약자지분조정이 한순간에 없어질 경우 재무제표 이용자가 오해할 수 있어 예외적 처리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러한 일탈회계 적용이 IFRS 개념체계와 충돌한다는 점이다. ‘극히 드문 상황’에서 경영자 판단으로 일탈을 허용하더라도 기준서의 상위 개념인 개념체계의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한국회계기준원의 지적이다.
IFRS 개념체계는 부채를 ‘과거 사건으로 인해 기업이 현재 부담하고 있는, 자원 유출을 수반하는 현재의무’로 정의한다. 기업이 본인 행동을 바꿈으로써 자원 유출을 회피할 수 있다면 현재의무가 존재하지 않아 부채로 인식할 수 없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해 이익을 실현할 의도가 없다면 계약자에게 지급할 배당은 발생하지 않는다. 이에 계약자지분조정을 부채로 계상해서는 안 된다.
기준서 1001호 문단 15에서도 “재무제표는 공정하게 표시돼야 하며, 이를 위해 개념체계에서 정의한 자산·부채 등의 내용을 충실히 표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자본으로 분류해야 할 항목을 부채로 분류할 경우 공정하지 못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문단 15는 재무제표의 공정한 표시에 관한 단락의 첫 문단이다.
이한상 한국회계기준원 원장은 “삼성생명이 설정한 계약자 몫은 회사가 주식을 매각해야만 실현되는 조건부 의무”라며 “부채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항목을 부채로 인식하는 것은 개념체계의 범위를 벗어날 뿐 아니라 ‘공정한 표시’라는 기준서 목적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삼성생명은 논란이 불거지자 올해 상반기에야 계약자지분조정 일탈회계 관련 내용을 보고서 주석에 기재하기 시작했다. 회계기준에서는 기업이 일탈회계를 적용할 경우 일탈 내용과 회계처리 방법, 기준서의 요구가 재무제표 이용자에게 오해를 줄 수 있어 재무제표의 목적과 상충되는 이유 등을 공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