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갈아탔는데도 문제? 설계사만 울리는 '부당 승환계약 규제'

보험사, GA로 이탈 막기 위한 규제 악용 '지적'

여지훈 승인 2023.06.15 10:15 | 최종 수정 2023.06.15 14:24 의견 0

A씨는 B보험사에서 영업을 하다 2021년 법인보험대리점(GA)으로 이직했다. GA로 직장을 옮긴 후 B보험사 상품이 아닌 경쟁 보험사 상품을 추천, 판매했다. 그런데 손해보험협회는 지난해 말 B보험사로부터 부당 승환계약 신고가 접수됐다며 A씨에게 제재금 300만원을 지급하라고 통보했다. A씨는 승환계약 당시 충분히 설명하고 자필서명을 받는 등 부당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부당 승환계약’ 금지 규제가 도마에 올랐다. 고객의 단순 변심으로 상품을 갈아타거나 고객에게 승환계약 내용을 충분히 설명한 경우에도 제재금 등이 부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보험사가 전속설계사 이탈을 막기위해 ‘부당 승환계약’ 조항을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A씨는 최근 손보협회로부터 100만원씩 총 3건의 부당 승환계약 제재금을 청구 받았다. 모두 기존에 다니던 B보험사의 상품을 경쟁사 상품으로 전환한 것이다.

하지만 A씨는 제재금을 청구 받은 3건 계약 모두 고객으로부터 충분한 안내를 받았다는 자필서명을 받았다. 3건 중 2건은 승환계약시 필수 작성하는 비교안내 확인서 사항을 전부 기입하기도 했다.

[사진=비교안내 확인서]

부당 승환계약은 보험모집인(설계사)이 고객의 기존 계약을 부당하게 해지하도록 유도하고 비슷한 계약을 새로 가입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기존 계약과 새로운 계약이 단기간에 전환될 경우 부당성이 있다고 보는 것.

설계사는 신계약이 발생해야 돈(판매 수당)을 번다. 부당 승환계약은 대개 설계사가 돈을 벌기 위한 행위다. 이 과정에서 고객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보험업법을 통해 금지하는 것.

보험업법 제97조(보험계약의 체결 또는 모집에 관한 금지행위) 3항에서는 신계약 전후 1개월 내에 기존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 부당 승환계약으로 간주한다. 계약자가 손해 발생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자필 서명(전자서명 포함) 등으로 명백한 의사를 표현한 경우만 예외다.

또 가입했던 보험을 6개월 이내에 해지하고 새로운 보험으로 갈아탔다면 기본적으로는 부당 승환계약으로 본다. 다만 중요 사항에 대해 고객에게 충분히 비교 안내했다면 부당 승환계약으로 보지 않는다.

이를 위반할 시 설계사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손보협회가 상호협정에 따라 자율적으로 부과하는 제재금 역시 동일 조항에 근거한다.

이런 조항을 볼 때 A씨는 억울할 수 있다는 게 보험업계 관계자의 의견이다. 제재금을 부과받은 3건 중 2건은 ‘승환계약 비교안내 확인서’ 사항을 전부 기입했기 때문. 나머지 1건도 충분한 설명을 듣고 갈아탔다는 고객의 자필서명이 있었다.

한 GA 대표는 "최근 설계사들의 GA 이직이 급증했다"며 "보험사가 설계사 이탈을 막고자 부당 승환계약으로 압박, 신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6개월 이내에 비슷한 보험상품으로 전환하는 것이라는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고, 고객의 자필서명까지 받았는데도 부당 승환계약으로 간주하는 건 지나친 규제"라고 비판했다.

다만 손보협회는 비교안내 확인서 작성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비교안내 확인서는 부당 승환계약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장치라는 의미다.

손보협회 관계자는 “협회도 제재금 부과에 대한 부담이 있으므로 충분한 소명 기회를 부여한다”면서도 “단순히 비교안내 확인서 작성만으로 부당 승환계약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확인서를 부실하게 작성하거나 고객 자필서명을 소명할 때 기입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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