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암보험 하나 가입시킬 여지도 없는데...또 마감이라니

김승동 승인 2022.08.30 09:55 | 최종 수정 2022.08.30 10:12 의견 0

김진수 인스토리얼 대표 kjinsoo@finevery.com

‘입추(立錐)의 여지(餘地)도 없다’

입추는 ‘송곳을 세우다’란 뜻이며, 여지는 이를 실현할 만한 ‘남은 좁은 땅’이란 의미다. ‘송곳 하나 세울만한 여유도 없다’란 말이다. 지금 보험 모집시장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진수 인스토리얼 대표


최근 보험 모집시장은 기존 계약을 해지하거나 감액하는 등의 사실상 ‘승환’ 없이는 신계약 체결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지점장 등 관리자의 하루 업무 중 대부분이 승환계약을 위한 결제다. 가망고객은 이미 보험료 납부에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여러 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모두 치열하게 경쟁 중인 제3보험 영역은 한 명의 피보험자가 가입할 수 있는 한도까지 정해져 있다. 이에 신계약을 밀어 넣을 여지가 크지 않다. 그럼에도 보험설계사는 매달 마감을 해야 한다. 보험사의 신상품 전략은 송곳이라도 세울 땅을 찾는데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가령 표적항암제 등 최신 암치료법을 보장하는 상품이 인기를 끈 이유는 피보험자가 가입 중인 기존 계약의 누적한도를 우회하는 새로운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새로운 담보도 곧 포화되고, 신계약 동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비슷한 예로 입원 등에서 간병인이 필요할 때 비용 부담을 해소하는 담보도 이미 체결된 입원일당과 큰 충돌이 없기에 인기를 끌었다. 유병자보험의 고지사항이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기존에 넘어가지 않았던 영역의 피보험자를 품지 않고서는 신계약이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포화된 모집시장에서 신계약을 지속적으로 체결할 수 있는 유력한 전략은 기존 계약의 문제점을 찾고 보완하는 컨설팅이다. 그럼에도 설계사의 컨설팅 역량은 과거와 비교해 결코 높은 수준이라고 할 수 없다.

가령 약 10년 전 손해보험사의 통합형 상품을 살펴보면 질병 및 상해 사망 만기를 1년 단위까지 세분화해 설계할 수 있었다. 또 사망보장뿐만 아니라 진단비 등 생존보장 만기도 년 단위로 조정 가능했다. 동일 보장을 복층으로 설계해 보험료 부담은 낮추고 보험금 효용은 높이는 전략적 컨설팅이 가능했다. 이렇게 컨설팅하는 것이 모집시장에서 당연한 것이었고, 설계사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교육도 많았다.

하지만 최근 상품은 만기를 5년 혹은 10년 단위로만 설계할 수 있다. 이런 상품으로는 세밀한 설계가 불가능하다. 또 지난 몇 년 간 이슈 중심의 단편적 보장성상품만 판매하는데 집중했기에 이제는 정말 입추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설계사는 반복적으로 뿌려지는 이슈만 쫓는 상황에 지칠 수밖에 없으며, 모집하는 건당보험료도 하락하고 있다. 이미 가입한 보험도 부담스러운데 지속적인 가입 제안이 들어오니 소비자도 거부감이 가중된다. 결국 기존 계약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문제점을 찾아낸 후 솔루션을 제안하는 합리적인 컨설팅 역량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상품 및 마케팅 전략은 이와 반대로 설계사와 소비자를 소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지금도 보장분석, 리모델링 등의 단어가 유행 중이다. 하지만 ‘CI보험은 무조건 해지’, ‘뇌출혈진단비는 보장범위가 좁으니 해지 후 뇌혈관질환진단비만 가입하면 됨’, ‘교통사고처리지원금 2억 미만은 모두 잘못된 계약이니 해지’ 등 ‘기-승-전-해지 후 신계약’이 솔루션을 제공하는 합리적인 컨설팅일 수는 없다.

단편 이슈에 노출되어 지금도 다수의 보장을 복잡하게 가입 중인 피보험자의 계약을 제대로 분석하여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설계사의 컨설팅 역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매달 매출과 마감에만 집중하는 근시안에서 벗어나 신상품 전략부터 교육까지 설계사가 보장분석 역량과 컨설팅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장기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렇게 가다가는 정말 월납 보험료 1만 원 조차 제안할 소비자가 사라져 대면채널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진짜 능력있는 설계사를 육성하고 이들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숨 쉴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조만간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플랫폼으로 설계사 시장이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

김진수 인스토리얼 대표 kjinsoo@fineve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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