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이 위헌 논란의 중심에 섰다. 자산운용비율 산정에 ‘취득원가’를 강제한 보험업감독규정이 상위법 위임 없이 만들어졌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다. 규정이 무효로 판단될 경우 삼성생명이 대규모 지분 매각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2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업법은 보험사의 계열사 채권·주식 보유 한도를 자기자본의 60% 또는 총자산의 3%로 제한하고 있다. 보험업감독규정은 이 비율 산정시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계산하도록 규정한다. 하지만 상위법인 보험업법과 시행령에는 산정 방식에 대한 위임 조항이 없어 규정 자체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기사: 위헌 논란 번지는 보험사 계열사 주식 ‘취득원가’ 감독규정]

[이미지=보험업법(위), 보험업감독규정 별표11(아래)에서 갈무리]

삼성생명의 경우 자기자본 기준보다 총자산 기준 한도가 더 낮아 사실상 ‘총자산 3% 룰’이 적용된다. 올 상반기 말 삼성생명의 총자산은 약 254조원으로, 계열사 지분 보유 한도는 약 8조원으로 추산된다.

삼성생명이 수십년 전 취득한 삼성전자 주식의 원가는 약 5400억원에 불과하다. 취득원가 기준으로는 총자산의 3%(8조원)에 한참 못 미쳐 규제 위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외에도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증권, 삼성자산운용, 삼성중공업, 호텔신라, 에스원 등 주요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취득원가 기준으로는 이들 계열사 지분을 모두 합산해도 약 5조7700억원(2022년 6월 말 기준)에 불과하다.

시가 기준을 적용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보통주는 약 5억390만주다. 지난 22일 종가(8만3500원)를 적용하면 평가액이 42조원에 달한다. 총자산의 3%를 현저히 웃도는 만큼 규제 충족을 위해선 34조원 규모의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즉 시가로는 삼성전자 주식만으로도 규제한도를 넘어서는 반면, 취득원가로 계산하면 계열사 지분 전체가 한도 이내에 머무는 셈이다. 다른 생명보험사는 총자산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 이러한 논란에서 벗어나 있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일명 ‘삼성생명법’)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개정안은 계열사 주식 보유를 시가로 평가하도록 하고, 한도 초과분은 법 시행 후 5년 내 해소하도록 규정한다. 법안 통과시 삼성생명이 그룹 내 금융계열사 지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삼성전자 지분을 대규모로 매각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차규근 의원은 법안 발의 취지에서 보험업감독규정의 위헌성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법이나 대통령령이 아닌 감독규정이 임의로 규정을 정한 문제를 지적했다는 점에서는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이미지=차규근 의원 법안 제안 이유 갈무리]

일각에선 금융당국이 삼성그룹에 특혜를 주는 동시에 유배당보험계약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시가 기준을 적용할 경우 삼성생명의 지분 매각이 불가피하고, 이 과정에서 수조원대 계약자배당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현행 규정이 이를 차단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현재 다른 금융업권은 시가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김성영 전 국회 보좌관은 “핵심 쟁점은 총자산 3% 룰에 취득원가 기준을 강제한 감독규정”이라며 “이는 상위법 위임 없이 계약자 배당권을 침해한 것으로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삼성생명 유배당보험 계약자 138만명 중 단 한 명이라도 헌법소원을 제기하면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를 심판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공권력 행사나 불행사로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만이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 다만 현재까지 관련 헌법소원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헌법재판소 관계자는 “해당 감독규정과 관련한 헌법소원심판 청구는 아직 접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삼성생명의 계열사 지분 문제는 규제 준수 여부를 넘어 국내 최대그룹의 지배구조와 막대한 현금 유출 부담과도 직결되므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감독규정이 위헌으로 판단돼 시가 기준이 적용되거나 삼성생명법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계열사 지분 매각에 나서야 한다. 이 과정에서 수조원대 법인세 납부와 유배당보험계약자 배당이 발생할 수 있다. 또 ‘이재용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흔들리면서 외부 요인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다만 김성영 전 보좌관은 “삼성전자 주식 매각으로 발생한 실현이익에 대해 법인세를 부과하지 말자는 주장은 다른 회사와의 형평성을 무시하고 또 다른 특혜를 주자는 논리”라며 “차익을 실현해도 어차피 계약자 배당으로 나가는 금액이 적으니 주식을 팔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 역시 기본 원칙을 무시한 주장”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