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가 계열사 주식을 보유할 때 적용하는 보험업감독규정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위 법률의 위임 없이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보유 비율을 산정하도록 규정한 점이 문제라는 시각이다.
19일 보험업법 제106조(자산운용의 방법 및 비율)에 따르면 보험사는 대주주나 계열사가 발행한 채권·주식을 자기자본의 60% 또는 총자산의 3%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다.
또 현행 보험업감독규정은 계열사 주식·채권 비율을 계산할 때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삼도록 하고 있다. 이 규정은 금융위원회가 정해 고시한다.
[이미지=보험업법(위), 보험업감독규정 별표11(아래)에서 갈무리]
해당 감독규정이 상위 법률의 위임 없이 임의로 산정 기준을 정한 것이어서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게 업계 일각의 지적이다.
헌법 제75조는 대통령이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해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 집행에 필요한 사항에 대해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같은 법 제95조는 국무총리나 행정 각부 장관이 소관 사무와 관련해 법률이나 대통령령의 위임 또는 직권에 따라 총리령이나 부령을 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도 2008헌마408 결정에서 “수권 법률이나 대통령령이 규정하지 않거나 위임 범위를 벗어난 사항을 수임명령에서 규정하면 위임입법 한계를 위배한다”고 판단했다.
즉 상위 법령에 위임 규정이 없거나, 위임 규정이 있더라도 그 범위가 한정되지 않았다면 하위 법령이 별도로 규정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의미다.
이른바 ‘포괄위임금지 원칙’이다.
법률이 위임 범위와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행정기관에 일반적·포괄적 입법권을 부여하면 행정입법이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위헌 소지가 발생할 수 있다. 이에 행정입법의 근거가 되는 사항을 명확히 규정하도록 해 행정입법을 통제하는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행정규제기본법 역시 법률 근거 없는 규제로 국민의 권리를 제한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보험업법과 보험업법 시행령 어디에도 자산운용비율 적용 기준에 관한 위임 규정은 없다. 규정이 없으므로 위임 범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하위법령인 보험업감독규정이 취득원가 기준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성영 전 국회 보좌관은 “상위 규정에 취득원가로 할지 공정가액으로 할지 정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하위 규정이 이를 임의로 규정했다면 위헌일 수 있다”며 “다른 금융업권은 계열사 주식 한도 계산시 시가를 적용하는데 보험업권만 취득원가를 적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당시 체결한 의향서에 모든 금융기관 회계를 시가 기준으로 한다는 조항을 포함했다”며 “국제기구와의 합의는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므로 보험업감독규정이 취득원가를 명시해 적용하도록 한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보험업법 개정을 통해 상위 법령에 위임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시각이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해당 사항은 국회 논의를 통해 입법적으로 해결돼야 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가능한 모든 하위 법규를 위임명령 형식으로 변경하면 해결될 수는 있다”면서도 “계열사 주식 평가 기준을 시가로 할지 취득원가로 할지는 별도의 논의를 통해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