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생명이 대규모 무상감자에 나선다. 자본금을 줄여 완전자본잠식 상태를 해소하고 유상증자 등 자본 확충을 위한 포석을 마련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새 사장 인선과 맞물려 본격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22일 KDB생명에 따르면 회사는 내달 15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무상감자를 결의할 예정이다. 보통주 9966만5129주 가운데 83.3%를 소각해 발행주식수를 1661만854주로 줄이고, 자본금은 4983억원에서 830억원으로 축소할 계획이다. 감자 기준일은 11월 17일이다. 회사는 감자 목적을 “주당 가치 상향 및 재무구조 개선”이라고 밝혔다.
무상감자는 누적 결손금을 보전하고 자본잠식을 해소하기 위해 활용되는 대표적 수단이다. 자본금을 줄인 만큼 감자차익이 발생해 결손금 해소에 사용될 수 있다. KDB생명은 지난 상반기 말 기준 결손금 마이너스(-)160억원, 자본총계 -1242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다만 무상감자 자체는 순자본 증가 없이 자본 내 항목만 바꾸는 형식적 조치다. 이에 결손금 보전 후에는 유상증자가 뒤따를 것이란 게 업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무상감자가 단독 조치가 아닌 자본 확충을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해석이다. KDB생명은 지난 2023년에도 무상감자 후 2개월 만에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진행했다.
업계에서는 후임 사장 인선과 맞물려 KDB생명의 본격적인 체질 개선 작업이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5일 박상진 신임 산업은행 회장이 취임하면서 곧 KDB생명의 신임 사장 선임도 이뤄질 전망이다. 현재 사장직은 지난 3월 공식 임기가 만료된 임승태 사장이 지키고 있다.
다만 보험업 경험이 없는 외부 인사가 임명될 경우 재무구조 개선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간 KDB생명은 유상증자로 확보한 자금을 경영진의 단기 성과 등을 위해 비효율적으로 사용해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전문가들은 장기적 시각에서 수익성과 안정성을 고려할 수 있는 보험업 전문 인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올해 2월 합류해 경영 전반을 총괄해온 김병철 수석부사장과 새 사장의 호흡도 성과를 좌우할 핵심 요소로 꼽힌다. 후임 사장이 합류하면 김 수석부사장의 영업 경험과 전문성이 맞물려 단기 실적 중심의 의사결정을 줄이고 장기 경영 전략 추진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정상화 작업에 대한 대주주 산업은행의 의지도 이전과 달리 강력하다는 평가다. 산은은 그간 KDB생명 매각을 위한 경영에 집중해왔지만 앞으로는 영업 체질 강화 등 실질적인 경영 정상화에 방점을 둘 계획이다. 김병철 수석부사장도 산은의 제안을 받고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곧 진행될 유상증자와 새 경영진 구성 작업이 형식적인 절차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경영 정상화로 이어져야 한다”며 “이번 기회를 놓치면 산은도 KDB생명의 정상화 적기를 놓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