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산업은 다른 금융업보다 훨씬 긴 시계를 가진 만큼 회사의 보수·성과체계도 장기적 이익에 부합하게 운영돼야 한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연초 열린 제6차 보험개혁회의에서 밝힌 말이다. 민간 기업의 보수체계에 당국이 관여하는 것이 과도한 개입으로 보일 수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보험산업 특유의 장기적 책임성과 공공성을 고려하면 타당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업계 안팎에선 경영진에 대한 수익성 중심의 성과평가가 현재 보험사들의 건전성 악화를 초래한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 나온다. 성과평가 기준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는 분위기다. 당국이 추진 중인 경영진 성과체계 개편안이 이 같은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보험업권 대표이사의 성과평가지표 중 수익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45%로, 전 금융업권 중 가장 높았다. 반면 건전성 비중은 11%에 불과해 최하위 수준에 머물렀다. 금융지주, 은행, 저축은행, 여신전문사 등 다른 업권은 건전성 비중이 모두 20%를 넘었고, 수익성 비중은 보험업권보다 낮은 30%대에 그쳤다.
보험사의 성과평가가 단기 실적에 치우치면서 장기 재무건전성을 위협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는 꾸준히 있었다. 특히 보험은 타 업권보다 계약 기간이 긴 장기상품 비중이 높은 만큼 건전성 중심의 성과지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한 보험업계 고위관계자는 “수익성 중심의 성과지표는 경영진이 재임 기간 동안 실적을 부풀리고자 하는 유인을 키운다”며 “단기 이익에만 몰두할 경우 장기 건전성이 훼손되고 그 부담은 결국 후임 경영진에게 넘어가게 된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새 국제회계기준(IFRS17)과 지급여력제도(K-ICS) 도입으로 금리 변동에 따른 부채 평가액 변화가 자본과 건전성에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됐다”며 “자본 안정성을 기반으로 한 지속 가능한 이익 창출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금융당국도 이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보험업권을 대상으로 금융업계 최초로 ‘경영진 보상체계 모범관행’을 마련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단기 실적 위주의 보상구조를 개선하고, 장기적인 경영 안정성과 재무 건전성을 유도하는 것이 기본 방향이다.
당국은 보험사들이 지급여력비율 등 건전성 지표를 성과보수에 반영하고, 장기적인 기업 성장을 유도할 수 있는 성과평가·보상 체계를 구축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또 임원의 업무 특성과 리스크 수준에 부합하는 평가체계를 도입하고, 규제 준수와 소비자 보호 등 비재무적 요소도 성과지표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성과평가의 기준과 지표별 반영 비중은 공시하도록 할 계획이다. 각 보험사는 올해 모범관행을 자율적으로 반영하는 준비 기간을 거쳐 내년 1분기부터 시범 운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일반 기업은 상법의 적용을 받지만 금융사는 금융사지배구조법에 따라 보다 엄격한 성과보수 체계를 갖춰야 한다”며 “성과보수를 책정할 때는 건전성과 사회적 책임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단기 성과 추구 유인이 과도해지지 않도록 성과보수 체계를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