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 노린 환자 늘겠네!"...독감 걸리면 '100만원'
시름 깊어지는 금감원...."내부통제 수준 면밀히 살펴볼 것"
여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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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0 10:31 | 최종 수정 2023.10.2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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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씨는 친구 A씨에게 독감에 걸렸으니 저녁 약속을 미루자고 했다. A씨는 병문안을 핑계로 B씨 집을 방문, 수건이나 물컵을 함께 썼다. A씨는 며칠 뒤 찾은 병원에서 독감 진단을 받았다. A씨가 부담한 진료비와 약값은 약 7만원. 그마저도 실손보험으로 돌려받았다. 하지만 A씨는 최근 가입한 보험에서 100만원의 독감치료비를 받아 이득을 챙겼다.
한화손해보험이 독감(인플루엔자)을 최대 100만원 보장하는 상품을 출시해 도마에 올랐다. 독감은 중대한 질병이 아닌 데다 감염자 근처에만 있어도 쉽게 전염될 수 있다. 소비자의 도덕적해이가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금융당국은 해당 상품의 설계 과정에서 적정한 내부통제가 있었는지 살펴보겠다는 방침이다.
2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한화손보는 이달 피보험자가 독감에 걸려 치료를 받을 경우 최대 1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는 특약을 한시 판매한다. 해당 상품은 독감으로 진단된 피보험자가 치료를 위해 독감 항바이러스제를 처방받으면 보험금을 지급(연 1회 한)한다. 16~60세까지는 100만원, 그외 연령에서는 50만원까지 가입이 가능하다. 해당 특약이 포함된 종합보험의 월 보험료는 1만~2만원 수준.
약관상 인정되는 독감 항바이러스제 성분은 오셀타미비르, 자나미비르, 페라미비르, 발록사비르 등이다. 오셀타미비르 성분이 포함된 상품으로는 시중에 널리 알려진 '타미플루'가 있다.
시중 약국에 문의한 결과 타미플루 가격은 약 2만5000원(10알·5일분)인 것으로 확인됐다. 타미플루는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는다. 조제료까지 합산하더라도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실제 금액은 1만원 내외다. 여기에 병의원에서 받는 독감 검사비와 진료비를 감안하더라도 총 비용이 10만원을 넘길 일은 드물다. 즉 보험 가입자로서는 졸지에 90만원이라는 '공돈'이 생기는 셈. 실손의료보험 가입자라면 환자가 실제 부담하는 금액은 더욱 줄어든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독감은 암과 같은 심각한 질병이 아님에도 전염성은 매우 강하다"며 "독감 치료에 드는 것보다 훨씬 많은 보험금을 지급할 경우 고의로 독감에 걸리려는 유인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미 시장에서는 100만원 보장을 부각하면서 해당 상품을 판촉하는 설계사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감 보장만을 강조하며 가입자를 유인하는 불완전판매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보험상품을 관리감독하는 금융감독원으로서도 고민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과거에도 도덕적해이를 부를 수 있는 상품에 대해 판매 중단을 권고했기 때문이다.
지난 2022년 하반기 운전자보험의 자동차부상치료비(자부치)특약이 문제가 됐다. 일부 보험사가 '의사 눈빛만 봐도 100만원'이라며 마케팅을 했다. 해당 자부치는 고의로 경미사고를 유발하고, 의사 진단만 받아도 100만원을 지급했다. 고의로 사고를 내고 보험금을 타는 사례가 적발되는 등 문제점이 커질 조짐이 보였다.
이에 금감원은 ▲단독사고 보상 금지 ▲보상금액 축소 등을 권고했다. 보험금을 노린 고의사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다.
또 코로나 양성 마스크를 중고마켓에 5만원에 파는 사례를 언론이 보도하기도 했다. 코로나에 전염되면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최근 보험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한도를 과도하게 상향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면서 "업계 자율적으로 내부통제 하도록 요청하고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상품 자율화로 인해 한도 자체를 놓고 당국이 규제할 수는 없다"면서도 "100만원이란 한도가 어떤 기준으로 선정됐는지, 설계 과정에서 적정한 내부통제가 있었는지 등을 면밀히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화손보 관계자는 "현재 삼성화재 등 타사에서도 독감 진료비 특약을 판매하고 있다"면서 "마케팅 차원의 한시적인 정책 운영으로 각사가 경쟁하는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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