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게재 순서
①보험금 심사 강화..."비정상 의료행위 지급 불가"
②실손보험 브로커 연계병원 난립...목적은 '수익창출'
③정상적 의료행위가 비정상에 밀려...문제는 결국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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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또래보다 발달이 느리면 부모는 걱정이 많아진다. 병원에서는 언어·지적장애는 아니지만 발달이 조금 느리다고 진단하고 치료만 받으면 또래보다 좋아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장애는 실손의료보험에서 보상이 되지 않지만 발달지연은 보상이 되어 치료비 부담도 적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실제 치료를 받고 보험금을 청구하면 보험금이 거절되는 경우가 있다. 일부 의료기관이 이익 창출을 위해 정상 아이까지 발달장애로 진단하고 있는 사례 때문이다. 일명 'R코드' 논란을 깊이 있게 짚어봤다.
발달지연 아동의 실손보험 보험금 지급을 두고 병원과 학부모, 보험사 간 갈등이 격화하는 분위기다. 병원과 학부모는 보험금을 주지 않는 보험사를 비난한다. 반면 보험사는 부당한 청구건은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으니 꼼꼼한 심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문제의 중심에는 전문컨설팅업체(브로커)가 있다. 정작 이들 브로커업체는 빠진 채 피해자끼리 승자 없는 다툼만 지속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뉴스포트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의료 브로커들은 체계적으로 짜인 사업계획서를 들고 병의원을 방문, 발달지연 관련 새 수익모델을 제시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제휴 의료기관 내 부설 클리닉을 개설하거나 이미 설립된 사설 발달센터와 의료기관을 연계해주는 방식으로 이익을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사업계획서를 살펴보면, 브로커가 개입해 개설·운영하는 부설 클리닉의 목표는 수익 창출이다. 이를 위해 공간 구성부터 의료기관과 클리닉의 업무 분담, 치료비용, 치료사 급여, 시간표 관리, 수익 배분 방식 등을 상세히 규정했다. 하지만 사업계획서 어디에도 발달지연 아동의 치료는 고려되지 않았다.
브로커들은 제휴 의료기관에 실손보험 인정비급여 코드를 적극 부여하고, 필요하다면 정상 아동에게도 치료코드를 임의로 생성할 것을 주문했다. 실손보험 보험금을 더 원활하게 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추정됐다.
심지어 한 브로커업체는 홈페이지를 통해 '병의원 수익 최대화를 위해 발달클리닉을 설립·운영하는 모든 절차를 직접 진행한다'고 소개하고 있었다. 클리닉 개설을 위한 입지 선정, 자금조달, 인테리어, 교육콘텐츠, 처방코드 생성, 보험사 대응 전담팀 운영, 의료법 법률 자문 등 A부터 Z까지 관여한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처방코드 생성과 치료행위 등이 클리닉의 주도 아래 이뤄진다는 점이다.
사업계획서에도 부설 클리닉이 센터장을 필두로 인력을 구하고 치료를 진행한다고 명시하고 있었다. 취재 중 접한 클리닉 이용 아동 중에는 초진 후 5개월간 전문의에게 재진을 받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
이는 사실상 무면허 의료행위라는 지적이다.
현재 병원 부설 클리닉에서 직접 발달지연 아동을 치료하고 있는 한 의사는 "코로나 발발을 기점으로 브로커업체가 횡행하면서 브로커와 연계한 병의원이 급속도로 증가한 것으로 안다"며 "의사가 수익 창출만을 목적으로 환자를 무성의하게 치료하는 건 옳지 않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도 "의사의 지시에 따라 작업치료 등 의료기사가 해야 될 업무를 민간 자격자가 하는 것은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며 "의사는 진단만 하고 실제 치료는 클리닉 인력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것은 의료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의료법 제27조(무면허 의료행위 등 금지)에 따르면 의료인이 아니면 의료행위를 해서는 안 되며, 비의료인에게 의료행위를 하게 해서도 안 된다. 이를 위반한다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다만 지난 2019년 부산지방법원은 '민간 자격자에 의한 치료 프로그램이라도 의사의 지시 감독 아래 진행된다면 치료행위로 보는 게 적합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즉 의사의 감독 아래 치료가 이뤄졌는지 여부가 관건이라는 것.
클리닉에서의 진행하는 치료를 의료행위로 인정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아동의 치료 과정부터 치료사 고용, 치료시간 배분까지 센터장의 주도 아래 이뤄진다는 건 클리닉의 실질적인 운영자가 센터장이라는 뜻이다. 의사는 명의만 대여해주고 실질적인 운영자는 따로 있는 이러한 의료기관을 '사무장 병원'이라 한다. 이 역시 의료법 위반이다.
의료법 제33조(개설 등)에 따르면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하는 의료인은 다른 자(의료인·비의료인)에게 그 법인의 명의를 빌려줘서는 안 된다. 이를 위반할 시 복지부장관이나 지자체장은 해당 의료기관의 의료업을 1년 내에서 정지시키거나 폐쇄를 명할 수 있다.
아울러 사무장 병원을 개설하거나 운영한 사람은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면허를 대여하고 대여받은 이들도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복지부는 앞서 2018년 사무장 병원이 급증하자 그 근절을 위한 종합대책을 밝힌 바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사의 진단만 받고 의료기록이나 치료행위 등이 전부 클리닉에서 진행된다면 이는 사무장 병원으로 의료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의료 브로커들은 코로나19로 병의원의 수익이 악화된 점을 노린 것으로 추정됐다. 이들은 이비인후과, 산부인과, 성형외과, 피부과 등 발달지연과 무관한 비전문 진료과에도 다수 접근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한 보험사에 청구된 올해 상반기 발달지연 관련 실손보험 청구금액 중 40%가 비전문 진료과에서 청구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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