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코드-발달지연 논란]① 보험금 심사 강화..."비정상 의료행위 지급 불가"

코로나 꺾였다지만...지급보험금 4년새 '6배 껑충'
비의료인이 치료행위...병의원 부설 클리닉 난립 '부당청구 증가'

여지훈 승인 2023.09.05 14:26 | 최종 수정 2023.09.05 17:08 의견 0

◆기사 게재 순서

①보험금 심사 강화..."비정상 의료행위 지급 불가"
②실손보험 브로커 연계병원 난립...목적은 '수익창출'
③정상적 의료행위가 비정상에 밀려...문제는 결국 '비용'

[편집자주] 또래보다 발달이 느리면 부모는 걱정이 많아진다. 병원에서는 언어·지적장애는 아니지만 발달이 조금 느리다고 진단하고 치료만 받으면 또래보다 좋아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장애는 실손의료보험에서 보상이 되지 않지만 발달지연은 보상이 되어 치료비 부담도 적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실제 치료를 받고 보험금을 청구하면 보험금이 거절되는 경우가 있다. 일부 의료기관이 이익 창출을 위해 정상 아이까지 발달장애로 진단하고 있는 사례 때문이다. 일명 'R코드' 논란을 깊이 있게 짚어봤다.

최근 보험사들이 발달지연과 관련 일제히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 보험금 지급 심사 강화에 나섰다. 병의원 부설 발달클리닉이 난립하며 부당청구가 증가한 것이 배경이다. 하지만 치료가 필요한 아동들이 적기에 보험금을 못 받는 사례가 늘면서 보험사로 비난의 화살이 쏟아는 분위기다.

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화재, 현대해상, KB손해보험 등 국내 대형 보험사들은 각 의료기관에 발달지연 아동의 실손보험 청구 심사와 관련된 협조 안내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보험사 발달지연 관련 협조문]

이들 보험사는 병의원 내 발달 클리닉 중 일부가 ▲정상 범주의 아동을 과잉 진단해 불안 심리를 조장하고 장기치료를 유도하는 점 ▲발달장애(F코드) 진단이 적정함에도 발달지연(R코드)으로 허위 진단서를 발급하는 점 ▲민간 자격자가 부당하게 치료행위를 하고 이를 실손보험으로 청구하는 점 ▲수익 보전을 위해 부모들에게 월 단위 선결제를 요구하는 점 등 비정상 영업을 하는 것을 문제로 꼽았다.

아울러 각 의료기관에 적법한 진료 절차를 확인하기 위해 치료자가 기재된 회기기록지, 일자별 외래경과기록지, 검사결과지, 치료사명부 등 고객의 실손보험 청구와 관련된 서류 준비에 적극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관련 서류가 미비할 경우 보험금 지급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일부 보험사는 부적절한 진료로 의심될 시 현장조사를 통해 추가 확인 절차도 진행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보험사들이 지급 심사 강화에 나선 건 발달지연 관련 보험금이 비약적으로 증가한 것이 배경이다.

국내 손해보험 5개사(삼성화재·현대해상·메리츠화재·KB손해보험·DB손해보험)가 발달지연 관련 질병코드인 R62(기대되는 정상 생리학적 발달의 결여)로 지급한 실손보험 보험금은 지난해 1184억8950만원. 이는 2018년(200억2441만원) 대비 6배가량 급증한 수치다. 업계에서는 발달지연 아동이 증가한 영향도 일부 있지만 비정상 영업을 하는 의료기관이 많아진 것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한다.

문제는 정작 치료가 필요한 아동과 정상 영업하는 의료기관까지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 비정상 의료행위에 지급되는 보험금을 줄이기 위해 보험사가 지급 심사를 강화한 것이 배경이다. 이에 정상적인 의료기관이나 환아까지 더 꼼꼼한 절차를 거칠 수밖에 없게 됐다.

10년 이상 병원 내 발달클리닉을 운영한 한 소아과 의사는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가 일상화되고 스마트폰 시청이 늘면서 언어와 사회성에 발달 문제를 겪는 아동들이 급증했다"며 "이들 중 상당수가 약간의 치료만으로도 정상으로 치료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보험사의 보험금 거절로 치료비 부담을 느낀 부모들이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치료 적기를 놓치면 발달지연 아동이 장애로 확정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고 우려했다.

보험사들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보험사가 부적절한 의료행위에까지 보험금을 지급하면 보험료 상승으로 선량한 피해자가 양산되기 때문. 보험사의 재정건전성 역시 타격을 입는다. 이에 무분별한 지급을 방지하고자 신중한 지급심사를 거치기 마련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금을 무조건 부지급하는 게 아니라 이미 치료받은 것에 대해서는 지급할 예정"이라며 "다만 의심스러운 병원을 이용해온 고객분들께는 다른 병원을 이용해달라고 안내드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의사가 주도적으로 치료했다는 사실만 확인한다면 보험금 지급을 안 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최근 발달지연 아동과 관련해 보험사들에 일괄적으로 보험금을 지급 거절하지 말도록 안내한 바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단순히 서류만 보고 지급 여부를 결정할 경우 선량한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며 "충분한 사고 조사 과정을 거쳐 합리적 사유가 있을 때만 부지급하도록 요청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부당한 치료행위나 보험사기로 의심되는 경우까지 지급하라고 한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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