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성 피부염 등으로 의사가 처방한 보습크림을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에서 보상하지 않아 논란이다. 실손보험은 의사가 치료 목적으로 처방했다면 보상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현대해상·흥국화재 등 일부 보험사가 올해 초 보상항목에서 보습크림을 제외했다. 의사가 처방했더라도 치료목적이 아니라면 보상에서 제외한다는 대법원의 판례를 보상 원칙에 반영했다는 분석이다.
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현대해상은 지난 3일 피부과 등 병원 의사가 처방한 보습크림은 보상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으로 보험금 지급 기준을 변경했다.
보습크림은 흔히 MD크림(Medical Device) 알려진 ‘점착성투명창상피복재’다. 일반화장품과 달리 의료기기로 분류, 의사가 처방하면 지난해까지는 실손보험에서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병원에서 구입, 의료비 영수증에 비용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보험사는 실손보험 보상 내용 중 하나인 ‘치료재료’로 구분해왔다. 이에 치료재료비로 보고 보험금을 지급했던 것. 제로이드MD, 아토베리어MD 등이 의사가 처방하는 보습크림의 대표상품이다.
현대해상 등이 보습크림을 보상에서 제외한 것은 최근 대법원의 판례를 보상실무에 반영했기 때문이다.
대법원(2018다251622)은 지난 2019년 8월, 보습크림과 관련한 소송에서 의사가 처방만 했을 뿐 직접 치료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료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치료(입·통원)비용은 단순히 상해(질병)로부터 회복하는 데 필요한 모든 비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의사가 주체가 되는 의료행위로부터 발생한 비용만을 의미한다’고 판시했다.
통상 보습크림은 병원에서 완제품을 구입한 후 환자가 직접 환부에 도포한다. 또 보습크림은 약사법에 정한 의약품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 판례를 실손보험에 적용하면, 병원에서 의사의 권고(추천)로 보습크림을 구입했더라도 의사가 직접 치료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료행위로 볼 수 없다. 이에 보험금도 지급할 필요가 없게 된다. 즉 의료행위도 아니며 보습크림이 치료재료라고도 볼 수도 없다는 것.
현대해상·흥국화재 등 일부 보험사의 이 같은 실손보험 보험금 지급 기준은 다른 보험사로 급속히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화재·DB손보 등 대형사들도 보습크림 보상 기준 변경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판결이 명확해 보험사가 면책을 주장하면 소비자가 대응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의사가 직접 보습크림을 개봉, 환자에게 도포한다면 의료행위가 될 수 있다. 즉 보습크림의 일부는 치료재료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보험업계가 이처럼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가 도를 넘어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부 의사는 브로커와 짜고 보험가입자에게 보습크림을 대량으로 판매했다. 보습크림은 실손보험에서 약제비가 아닌 통원치료비로 포함되기 때문에 통상 25만원까지 구입할 수 있다.
보험가입자는 실손보험 보험금으로 구입비용을 충당하고, 보습크림은 당근마켓 등 중고시장에 저렴하게 재판매해 수익을 챙기는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금융감독원 내부에서도 논란이다. 모럴해저드가 심각한 등 문제가 있다는 시각과 함께 무조건적인 부지급도 문제가 된다는 입장이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보습크림이 비급여 항목으로 분리된 후 보험금 지급이 폭증하고 있다”며 “비급여 항목 관리를 위해 과잉처방 등은 단속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금감원 관계자는 “아토피성 피부염 환자 등 일부는 보습크림을 사용해왔으며, 이를 실손보험 보험금으로 충당해왔다”며 “해당 내용을 살펴본 후 새로운 지급기준 등을 권고할 필요도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전문가의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전상현 HBC자산관리센터 대표는 "실손보험은 대표적인 포괄주의 상품"이라며 "의사의 소견상 필요한 검사나 치료를 했다면 보상하지 않는 손해가 아니면 보상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용 주체가 의사가 아닌 피보험자(가입자)라고 해서 면책이라면 의사가 처방하는 모든 연고가 부지급 대상이어야 한다"며 "모럴해저드가 심각하더라도 부지급에 따른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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