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당근마켓:) 롯데손보 3조, 쿨거시 네고

거래가능. 남창동 끌올 1일 전

김승동 승인 2024.04.24 14:27 | 최종 수정 2024.04.24 15:43 의견 0

5년 전, 3734억원에 구매
구매 직후 3750억원 들여 세탁(유상증자)했습니다.
사이즈 M (S입으시는 분도 핏 좋아요)

지난해 기준 백화점 가격 1조2750억원(순자산)이네요.
한정판이라 현재 경매가 2조4000억원(CSM)부터 시작하네요.

구매 후 관리 잘해 상태 좋습니다.
중고거래인만큼 반품·환불 안 됩니다.

김승동 뉴스포트 기자


올해 초 당근에 빠졌다. 이사를 하면서 필요 없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물건을 당근마켓에 싼값에 올렸다. 5분도 안 돼 채팅이 왔고, 문고리(비대면) 거래가 진행됐다. 판매만 한 것이 아니다. 자전거 3대를 구매했다. 그도 나처럼 시세보다 싼 값에 물건을 올렸을 거다. 그 덕에 자전거 구매는 대만족이다. 아내에게는 말 못 했지만 실패한 구매도 2건 있다. 실패한 구매는 여기까지만 밝히는 게 내 신상에 좋을 듯하다.

구매자가 물건에 대해 잘 안다면 판매자도 만족하는 딜이 성립된다. 받은 매너 평가도 좋아지고, 구매 후기도 좋은 내용이 남는다. 판매자의 당근마켓 매너온도는 올라간다. 매너온도는 곧 판매자의 신뢰도 점수가 된다. 판매자는 다음 거래에서 더 높은 확률로 좋은 거래가 성사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진다.

실패한 거래라면 좋은 구매후기를 남기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실패한 2건의 거래에 대해서는 평가를 박하게 했다. 쪼잔한 게 아니다. 구매자의 당연한 권리라고 핑계를 대겠다. 실패한 거래는 내가 잘 모르는 물품을 급하게 샀기 때문이다.

당근마켓은 단순 중고거래 이상의 재미가 있다. 짧은 텍스트와 몇 장의 사진에 판매자와 구매자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숨어 있다.

판매자는 구매자가 혹할만한 제목과 설명, 그리고 가격을 제시해야 한다. 구매자 입장에서는 정보의 비대칭이 문제다. 판매자를 얼마나 신뢰(매너온도)할 것인지 확인하고, 해당 중고 상품의 적정 가격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적당한 혹은 저렴한 가격에 딜을 시작할 수 있다.

당근마켓은 어찌 보면 역경매 방식이다. 판매자가 먼저 가격을 제시하고 이후 구매자가 네고(negotiation) 한다. 이런 역경매 방식은 M&A시장도 마찬가지다. 판매자가 먼저 시장에 매물을 내놓고 인수자를 찾는다. 거대 기업의 M&A도 실상은 당근마켓인 셈이다.

롯데손보가 당근에 나왔다.

지난 2019년 JKL파트너스가 지분 53%를 3734억원에 인수했다. 인수 직후 3750억원의 유상증자로 지분율을 77%까지 높였다. 이후 체질개선 작업을 진행, 지난해 말 기준 순자산 1조2750억원 예상기대이익이라고 할 수 있는 CSM 2조3966억원으로 끌어올렸다. 시장에서 보험사의 기업가치는 순자산에 CSM을 합친 것으로 본다. 이에 판매자는 3조원 이상을 부르고 있다.

현재 시장에서 알려진 당근 참여자는 처브그룹과 신한금융지주 등이다. 그러나 이들이 조 단위를 투입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미 종합손해보험사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이 필요한 건 판매조직이다. 법인보험판매대리점(GA)을 인수하는 게 효율적이다. 3000억원이면 5000명 정도의 조직을 인수할 수 있다. 롯데손보는 매력적이지 않다.

손보사를 갖지 못한 우리금융지주도 후보자다. 하지만 우리금융지주는 현재 보험사보다 증권에 관심이 있다. 인수한 한국포스증권이 제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보험업계에 시선을 집중하지 않을 것으로 시장에서는 평가한다.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판매자는 관심도를 끌어 올려야 한다. 당근에서 관심도를 높이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끌올(과거 작성했던 내용을 재작성해 첫 페이지로 끌어 올리는 것) 과정에서 가격을 낮추는 것이다.

JKL파트너스는 가격을 낮추기가 쉽지 않다. 금융비용 때문이다. 매각이 지체될수록 쫓기는 건 판매자다. 이 과정에서 어쩌면 2023년 CSM보다 매각가가 낮아질 수도 있다.

게다가 한정판이라는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구매자가 파악할 수도 있다. MG손보와 대형GA를 동시에 인수하는 것이 롯데손보를 인수하는 것보다 더 합리적일 수도 있다며 계산기를 꺼낼 수도 있다.

나는 최근 자전거를 즐긴다. 좋은 상품을 저렴하게 샀다는 생각에 탈 때마다 기분이 좋다. 동시에 불안하다. 구매에 실패한 2개 상품을 아내에게 걸리기 전에 다시 당근마켓에 올려 손실을 보전해야 한다. 부디 나처럼 해당 상품에 대해 잘 모르는 구매자가 나타났으면 좋겠다.

롯데손보가 당근마켓에 올라갔다면 과연 구매자가 있을까? 제시 가격 그대로 급하게 산다면 과연 아내에게 거래를 자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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