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사들이 보험료 산정의 핵심인 '경험위험률' 산출 시스템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교한 상품 설계로 손해보험사가 주도해온 제3보험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실질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하드웨어에 대한 투자가 필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생명보험사들은 기초통계 및 경험위험률 산출 시스템 구축을 위한 작업을 검토 또는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르면 오는 8월 확정될 새 데이터 집적 레이아웃에 맞춰 자료를 제출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풀이된다. [관련기사: [단독] 생보업계, 제3보험서 손보사 이길까? 과거 통계 소급 적용]
[이미지=생명보험협회]
삼성생명은 올해 안에 사업자를 선정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시스템 개발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한화생명은 2분기 중 입찰을 거쳐 3분기 사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개발 기간은 약 1년이 될 전망이다. 교보생명은 계리법인과 사전 컨설팅을 진행 중이다. 다만 아직은 단순 통계 검증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KB라이프생명은 이달 사업자를 선정, 내달부터 1년여간 시스템 구축 작업에 들어간다. 하나생명은 건강보험 출시 준비와 함께 시스템 개발을 병행하고 있다. 신한라이프는 연내 입찰을 계획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사업 일정은 미정이다.
NH농협생명은 기존 시스템 전반을 점검 중이다. 내부 요건 정비를 마친 뒤 이듬해 말부터 2027년까지 시스템을 새로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흥국생명은 아직 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동양생명은 구체적인 일정 공개를 꺼렸다. 다만 오는 2분기 중 사업에 착수해 내년 상반기 완료를 목표로 할 것이란 게 업계의 관측이다.
생보사들이 새로운 경험위험률 산출 시스템 구축에 나서는 건 참조요율 기반의 정교한 상품 설계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미 세분화된 담보별 경험통계를 기반으로 상품을 개발해온 손보사들과 달리 그간 생보사들은 큰 담보 위주로 데이터를 집적해왔다. 이에 정밀한 보험료 산정과 상품 설계 역량이 상대적으로 뒤떨어진다는 평가가 많았다.
업계에선 고성능 하드웨어에 대한 투자 없이 단순 시스템 구축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프라 투자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업계 한 전문가는 "생보사들이 기존 인프라(서버)에서 경험위험률을 산출하려는 경향이 크다"면서 "상당한 투자 비용이 들더라도 시장 수요에 맞춘 상품을 적시에 출시하기 위해선 장비 성능 향상을 위한 투자가 필수적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스템 장비의 성능은 경험통계 활용 효율에 큰 차이를 발생시킨다"며 "용량과 속도에서 충분한 성능이 받쳐주지 않으면 분석과 산출에 시간이 지체돼 시장 대응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한편 DB손해보험, 현대해상, 메리츠화재 등 주요 손보사들은 2010년대 중반부터 경험통계 산출 시스템을 도입, 지속해서 고도화해온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