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여보세요. 잠깐만요!” “아야! 왜 때리니?”

두더지게임...실적에 쫓기는 보험사들이 서바이벌 게임에 뛰어든다

김승동 승인 2024.05.02 10:38 의견 0

‘오징어게임은 2021년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대한민국의 스릴러 생존 드라마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대한 위키백과의 설명이다. 빚에 쫓기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456억원, 거액의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에 뛰어든 내용을 담고 있다. 게임 규칙은 단순하다. 어렸을 때 해봤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설탕 뽑기’, ‘구슬치기’ 등의 게임을 하며 탈락자를 솎아낸다.

김승동 뉴스포트 기자


최근 보험시장을 보면 오징어게임처럼 생존게임을 하는 듯 보인다. 다만 게임 규칙은 다르다. 눈치를 보고 경쟁자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경쟁자가 함께 뛰어들면 빠르게 빠져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커다란 망치에 머리를 두들겨 맞는다. 일명 ‘두더지게임’이다.

보험판 두더지게임에서 등장한 아이템은 대표적으로 ‘독감 100만원’, ‘운전자보험 변호사선임비’, ‘단기납종신보험 130%’, ‘간호·간병통합일당’, ‘상급종합병원 1인실입원일당’ 등이다. 시장의 눈치를 보다 빠르게 상품을 개정한다. 보상한도를 상향 조정하고, 환급률을 올리는 방식 등이다.

상품을 개정하면 대형 보험판매대리점(GA)를 통해 거의 실시간 소문이 난다. 일선 설계사는 상품이 좋아졌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고객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이미 비슷한 보험에 가입되어 있던 고객은 관심이 없다. 전화를 끊으려 하는 고객을 붙잡고 말을 이어간다. “잠깐만요!”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어제보다 상품이 더 좋아졌으며, 곧 사라질 것이라는 점만 알리면 된다. 보험소비자도 오래 고민할 수 없다. 우선 가입하고 정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청약철회를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정말 곧 사라지니 가입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과정에서 튀어나온 두더지를 때리는 망치처럼 어김없이 금융감독원이 등장한다. 명분은 만들기 나름이다. 시장질서를 혼란케 하며, 보험사기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 등이다. 일부는 보험사의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게 명분이 되기도 한다.

지난 4월에도 ‘유사암 2000만원’ 담보를 두고 두더지게임이 진행되었다. 그 게임은 불과 1주일도 유지되지 않았다. 5월도 비슷할 것이다. 보험사는 어떤 두더지를 내보낼 것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현재 보험 시장은 업셀링(상품 추가 판매)이 대세다. 2030세대는 보험에 관심이 없으며, 5060세대는 이미 대부분의 보험에 가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업셀링을 위해서는 기존 상품보다 더 좋아야 한다. 상품 일부를 개정해 특정 부분만 도드라지게 하는 것이다. 두더지게임의 두더지처럼.

소비자는 잘못이 없다. 더 좋은 상품을 선택, 가입하는 건 현명한 소비자의 권리이자 혜택이다. 판매하는 설계사도 잘못이 없다. 좋은 상품이 나왔다면 이를 소비자에게 적극 알려야 한다. 두더지를 고민하는 보험사도 마찬가지 잘못이 없다. 경쟁사보다 더 좋은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금감원도 사실 잘못이 없다. 시장 질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치열한 눈치싸움이 벌어진다. 그리고 누군가는 두더지처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얼얼할 것이다.

최근 보험시장을 보면, 어렸을 때 오락실을 지나갈 때면 들렸던 두더지게임이 자꾸 떠오른다. “여보세요. 잠깐만요!” “아야! 왜 때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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