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보사, 17조원 썰물처럼 빠져나가...수지차 심각
10년 전 세법개정 이슈로 판매한 저축성보험 대량 해지
여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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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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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생명보험사에서 17조원 이상의 돈이 빠져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3개사에서만 10조원이 넘는 돈이 샜다. 10여년 전 판매한 저축성보험에서 대량 해지가 발생한 탓이다. 생보사들이 최근 단기납종신보험을 경쟁적으로 판매한 것은 보험수지차를 방어하는 동시에 수익성까지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게 보험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30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생명보험사에서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에 가입해 들어오는 보험료보다 보험금·환급금 등으로 지급한 돈이 더 많았던 것. 즉 보험수지차 역조현상이 발생했다.
보험수지차는 수입보험료에서에서 지급보험금(보험금·환급금·배당금)과 실제사업비를 차감한 금액이다.
지난해 10월 현재 '빅3' 생보사의 보험수지차는 ▲삼성생명 마이너스 4조7960억원 ▲한화생명 마이너스 3조원 ▲교보생명 마이너스 2조5040억원이었다. 빅3 이외 ▲NH농협생명 마이너스 2조4640억원 ▲푸본현대생명 마이너스 1조6880억원 ▲미래에셋생명 마이너스 1조2310억원 ▲신한라이프 마이너스 1조1980억원 순이었다. 생보사 전체 보험수지차를 합산하면 마이너스 17조2190억원에 달했다.
2021년 12월까지만해도 생보사 전체 수지차는 역전되지 않았다. 들어오는 돈이 나가는 돈보다 소폭 많았던 것. 그러나 지난 2022년 1월 보험수지차 역조현상이 급격히 발생했다. 1월 생보사들의 보험수지차는 마이너스 1조6160억원이었다. 단 1개월 만에 급격한 반전이 발생한 것.
이는 지난 2013년 2월 세법개정 직전 저축성보험 절판마케팅 이슈 때문으로 업계는 분석한다. 세법이 개정되면서 저축성보험에 개인당 2억원의 비과세 한도가 생겼다. 이전까지는 보험계약을 10년 이상만 유지하면 보험차익에 대해 한도 제한 없이 비과세가 적용됐다.
이 세법개정 이슈로 단기간에 몰렸던 뭉칫돈이 '10년 유지'라는 비과세 요건을 충족하자 대거 해지가 발생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대규모 수지 역조 현상을 맞은 보험사들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 지난해 급등한 금리로 인해 자산운용수익 역시 좋지 않았다. 또 새로 적용한 회계기준(IFRS17)으로 인해 보장성보험을 팔아야 보험계약서비스마진(CSM)을 확보할 수 있다. 이에 일시납 종신보험 판매에서 답을 찾았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한 보험업계 전문가는 "당초 단기납 종신보험은 납기 완료 시점에 대량의 해지가 발생해 보험사의 수익성이 악화할 것이란 우려가 있었다"면서도 "(보장성보험으로 수지차 역전 현상을 줄이기 위해) 보험사들 간 판매 경쟁이 가열된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지난해 생보사들의 수지 역조 현상은 2013년 세제 개편 직전 유입된 자금이 유출된 영향이 주효했다"며 "특히 최근 시중 금리가 오르면서 과거 가입한 저축성보험은 해지 유인이 커진 반면 신계약들은 보장성보험이 많아 수지차가 전반적으로 크게 악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생보사의 저축성보험 초회보험료는 2011년 4분기 한기 동안 4조3530억원이었다. 1년 뒤인 2012년 4분기에 17조1090억원으로 폭증했다. 이어 2013년 1분기에만 25조192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세법 개정 이슈가 끝나고 2분기가 되자 2조원대로 급감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지난해 발생한 저축성보험 해약환급금은 28조2190억원. 이는 2020년(14조1300억원)과 2021년(14조8740억원) 대비 2배가량 급증한 수치다. 이중 4분기에만 지난해 전체 해약환급금의 절반에 달하는 13조5040억원이 빠져나갔다.
올해 1분기에도 저축성보험에서 7조450억원의 해약환급금이 발생했다. 과거 몰린 저축성보험이 비과세 요건인 10년 유지 조건을 충족한 시점에 대거 해지됐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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