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의료비 정액으로 돌려 주는 상품 가입하세요"...금감원 '상품 개발 중지'

사실상 제2의 실손보험...규제 사각지대
과잉의료 유발, 실손보험 손해율·건보 재정악화 부작용 우려

여지훈 승인 2023.08.18 05:59 | 최종 수정 2023.08.18 06:59 의견 0

금융당국이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과 유사한 정액실손보험(가칭)의 개발에 제동을 걸었다. 보건복지부와 금융당국이 협력해 구축해온 실손보험 규제 체계를 해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업계는 해석한다.

1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최근 금융감독원은 실손보험과 유사한 정액보험의 개발을 지양하도록 보험사들에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보험사에서 이 같은 상품을 개발하고 있음을 인지, 출시 전 개발 중단을 요청한 것.

[사진=금융감독원]

문제가 된 상품들은 ▲입원과 통원을 구분해 각각 보험금 지급 ▲의료비 발생 횟수에 따른 보험금 지급 ▲의료비 구간별로 정액 보험금 지급 등의 구조로 알려졌다.

가령 4~5만원의 의료비 발생시 4만원을, 5~6만원의 의료비 발생시 5만원을 지급하는 식이다. 각 의료비 구간별로 정해진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 구조상 실손보험과 매우 흡사한 데다 의료비와 보험금 간 차이도 크지 않아 사실상 '제2의 실손보험'이라고 해도 무방하다는 평가다.

문제는 보장내용이 유사함에도 불구, 이들 정액보험이 실손보험 규제 체계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데 있다.

현재 4세대 실손보험은 2개 이상 중복 가입했더라도 비례보상을 통해 실제 발생한 진료비만큼만 보장한다. 또 급여에 20%, 비급여에 30%의 자기부담률을 설정하고 보장한도, 보장횟수 제한 등 다양한 규제 체계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정액보험에는 이러한 안전장치가 없다. 두 개 이상의 상품에 가입했다면 사실상 정액보험금을 지급하는 실손보험에 중복 가입한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셈이다.

통상 통원 의료비로 5만원이 나왔다고 가정하면 실손보험에서 자기부담금을 제외한 의료비를 받는다. 여기에 만약 정액실손보험 2개를 가입했다면, 각각 상품에서 4만원씩 받는다. 즉 병원에 갈수록 돈을 벌 수 있는 셈이 된다.

이는 실제 부담한 비용을 넘어 보상할 수 없다는 손해보험의 '이득금지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초과이익을 누릴 수 있다면 가입자(환자)는 불필요한 의료서비스 이용 유인이 커지게 된다. 이에 과잉진료가 늘어나고 보험금 누수가 심화한다. 실손보험 손해율은 물론 건강보험공단 재정까지 악화한다.

기존에도 의료비에 따라 보험금을 차등 지급하는 정액보험은 있었다. 일례로 ▲더블업 마이 라이프(삼성화재) ▲메디컬플러스건강보험(현대해상) ▲프로미라이프 참좋은 훼밀리더블플러스 종합보험(DB손해보험) ▲병원비든든NH의료비보장보험(NH농협생명) 등이다.

하지만 이들 상품은 연간 의료급여 내 본인부담금(본인부담 급여의료비) 총액을 기준으로 보험금을 지급했다. 1년간 발생한 본인부담 급여의료비가 100만~200만원이라면 100만원을, 200만~300만원이라면 200만원을, 300~500만원이면 500만원을 지급하는 식이다.

연간 본인부담 급여의료비 총액이 100만원을 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에 실제 보험금이 지급되는 경우는 드물었고 과잉진료로 인한 부작용도 크지 않았다는 게 금감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번에 문제시된 상품들은 의료비 발생시마다 보험금을 지급해 사실상 실손보험과 같다"며 "그럼에도 규제는 적용받지 않아 실손보험의 도입 취지를 침해하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 상품에 가입한 환자들이 치료가 끝났음에도 병원에 남기를 요청하는 경우도 자주 관찰됐다"며 "이에 지난달 말 보험협회와의 협의를 거쳐 각 보험사에 개발 중단 요청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향후 모니터링을 통해 이와 유사한 상품이 개발되지 않도록 지속해서 관리감독하겠다는 방침이다.

저작권자 ⓒ 뉴스포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