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실손의료보험은 정말 꼭 가입해야 하는 필수 보험일까?

김승동 승인 2024.07.22 10:32 | 최종 수정 2024.07.22 14:39 의견 0

단도직입으로 결론부터 말하면, 이제 나는 실손의료보험을 필수 보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입할 필요성이 낮은 상품이라는 쪽으로 생각의 무게가 기울고 있다.

2022년 기준 국민건강보험 가입자는 5141만명이다.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부분을 보장 받기 위해 가입하는 실손보험 가입자는 3565만명이다.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실손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셈. 이에 실손보험의 별명 중 하나는 ‘제2의 국민건강보험’이다.

많은 보험 전문가들은 실손보험을 필수 보험으로 구분해왔다. 이는 이 상품의 특징에서 비롯한다.

실손보험은 포괄주의 방식으로 실제 발생한 손해를 보상하며 중복보상을 하지 않는다. 해당 상품 약관에 ‘보장하지 않는 손해’ 항목에서 명시한 것을 제외한 모든 질병과 상해를 보장한다. 이에 비해 열거주의 상품은 ‘보장하는 손해’를 명시한다. 즉 포괄주의인 실손보험은 일부만 보장에서 제외하는 반면 일반적인 열거주의 상품은 일부만 보장한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실손보험은 경증질환으로 동네 병·의원에서 받은 치료비의 상당액까지 보장한다. 소액 보장이 가능하다는 점을 부각해 반드시 가입해야 하는 상품으로 꼽아왔고, 대표적인 미끼상품으로 그 지위를 이어왔다.

하지만 실손보험의 효용성은 점차 희석되고 있다. 이에 실손보험은 필수 상품의 지위를 점차 잃고 있다.

김승동 뉴스포트 기자


첫 번째 이유는 자기부담율의 상승이다.
1세대부터 4세대까지 상품이 변경되면서 자기부담율이 0%에서 30%(비급여)까지 높아졌다. 만약 5세대 실손보험이 등장한다면 자기부담율은 30%를 초과할 가능성도 있다.

두 번째는 국민건강보험의 본인부담금환급금 공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본인부담 상한액을 초과하는 의료비를 환자에게 다시 돌려준다. 의료 파산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다. 즉 의료비가 5000만원 발생했다면 소득분위에 따라 87만원(최대 808만원)을 초과하는 금액인 4913만원(4192만원)을 공단으로부터 돌려받는다.

2009년 10월 이후 판매한 2세대 실손보험 이후 표준약관에서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환급받을 수 있는 금액은 보상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즉 공단이 지급한 돈인 4913만원을 보험사가 공제하고 보험금을 지급한다.

문제는 2009년 9월까지 판매된 1세대. 이 상품 약관에서는 본인부담금환급금을 공제한다는 내용이 없다. 하지만 지난 1월 대법원(2023다283913)은 ‘피보험자가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른 요양급여 중 본인이 최종적으로 부담하는 부분을 담보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즉 약관에 해당 내용이 없더라도, 2세대 이후 실손보험과 마찬가지로 본인부담금환급금을 공제 후 지급해도 된다고 본 것이다.

세 번째는 제약회사의 위험분담제에 따른 환급금 공제다.
위험분담제는 고가 신약의 효능·효과의 불확실성을 제약회사가 일부 분담하는 제도다. 환자는 고가의 신약을 사용한 후 그 약값의 일부를 제약회사로부터 돌려받았다.

표적항암제인 렘트라다주는 1회 치료시 약값이 약 1000만원, 면역항암제 여보이주는 1300만원에 달한다. 하지만 제약사는 약값의 일부를 돌려준다. 가령 약값이 1000만원이며 제약사가 그 절반인 500만원을 돌려준다고 가정하자. 5회 치료시 환자가 부담하는 돈은 5000만원이지만 2500만원을 제약회사가 돌려준다. 환자가 실제 부담하는 약값은 2500만원이다.

실손보험 약관에는 이 위험분담제로 환자가 돌려받는 돈을 보험사가 공제한다는 내용이 없다. 하지만 지난 11일 대법원(2024다223949)은 이 위험분담제를 공제하고 실손보험 보험금을 지급해도 된다고 판결했다. 두 번째 이유인 건강보험 본인부담금환급금과 같은 논리에서다.

네 번째는 보험금 청구시 분쟁 증가다.
실손보험은 포괄주의다. 이에 치료목적으로 한 의료행위의 비용은 보상해야 한다. 하지만 비급여 진료가 많아지자 보험사는 ➀치료 여부 ➁직접치료 여부 ➂치료(수술·입원 등)의 필요성 여부 등을 따져 보험금 지급을 결정한다. 다시 말해 과거에는 치료를 받으면 거의 무조건 보험금을 받았지만, 향후에는 보험사가 판단한 치료 목적에 부합해야 분쟁 없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보험료 상승 부담이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질병에 노출될 확률은 커진다. 이에 포괄주의로 보장하는 실손보험의 중요성도 높아진다. 그러나 같은 연령대의 가입자에게 지급하는 보험금이 증가하면 그만큼 손해율이 높아지며, 높아진 손해율로 인해 보험료가 상승한다.

다시 말해 실손보험이 정말 필요할 때는 실손보험을 유지하는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반면 이때 소득은 낮아지거나 없어질 수 있다. 또 현재 판매하는 실손보험은 매년 갱신이기 때문에 소득이 있는 시절 보험료를 미리 납입할 수도 없다.

보험은 발생 확률은 낮은 반면 발생시 큰 재정적 위험을 전가하기 위해 가입하는 금융상품이다. 실손보험은 연간 최대 5000만원까지 보장이 된다. 이런 점에서 큰 재정적 위험을 전가하는 상품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큰 재정적 위험을 전가하지는 못하는 상품으로 바뀌고 있다.

보험시장을 바라보는 제3자의 입장에서 실손보험이 꼭 필요한 것인지 조심스러운 의심이 시작됐다. 실손보험에 가입할 돈으로 비갱신 정액형 보험을 더 든든하게 가입하는 게 좋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향후 정말 의료비가 증가할 때 더 여유롭게 치료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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