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손해보험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전속설계사 유치에 나서 업계가 들썩인다. 롯데손보는 1년간 직전 연봉의 80%를 기본급으로 보장한다는 조건으로 리크루팅매니저(RM)를 채용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리크루팅(신규 설계사 증원)을 주 업무로 하고 신계약 판매도 병행한다.
3개월마다 이뤄지는 평가에서 계약을 연장하거나 사업가형 관리자로 전환이 가능하다. 판매한 보험계약이 실효 또는 해지되거나 목표 실적을 달성하지 못했더라도 기본급은 환수되지 않는다. RM은 기본급을 받는 동안 인력 충원에만 몰두할 수 있다.
이는 일찍이 메리츠화재가 도입한 사업가형 본부장제를 보완한 것이란 게 업계의 지배적인 평가다. 메리츠화재는 수수료를 더 주는 형태로 외부 인력을 유인, 급속도로 영업조직을 확장했다. 하지만 1200%룰이 도입되면서 현재는 내부 승격제도만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실적 미달시엔 본부장들에게 환수가 진행됐다.
1200%룰은 보험설계사가 받는 첫해 수수료를 월납 보험료의 12배 이내로 제한하는 규정이다. 롯데손보는 계약직으로 선채용, 향후 사업가형 관리자로 전환하는 방식을 택했다. 수수료가 아닌 기본급 제공을 통해 사실상 1200%룰을 우회했다는 평가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업가형 관리자가 RM(계약직)이란 중간 과정을 거쳐 소속을 옮기는 것뿐이란 지적이다. [관련 기사 : [단독] "직전 연봉 80%에 환수도 없어요" 롯데손보, 리크루팅에 '무리수']
현재 롯데손보는 보험사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다. 최대주주는 빅튜라 유한회사다. 빅튜라는 앞서 사모펀드 JKL파트너스가 롯데손보를 인수하기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이다. 빅튜라의 지난해 3분기 롯데손보 지분 보유율은 약 77%다.
JKL파트너스가 롯데손보를 인수한 시점은 2019년. 약 5년이 지났다. 바이아웃(Buy-out) 투자자인 JKL파트너스로선 출구전략을 고민할 시점이다. 높은 가격에 회사를 매각해 최대한의 투자금을 회수하는 게 핵심이다.
이를 위해 조직규모와 매출을 유의미하게 신장시켜야 한다. 인수 당시보다 기업가치가 높아졌음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간의 성적표는 좋지 못했다. 시장의 평가도 낮았다. 롯데손보의 주가는 지난해 중순까지 수년간 최저가 근처에 머물러 있었다. 매각 이슈가 물살을 탄 지난해 하반기에야 오름세를 보였다.
롯데손보는 파격적인 조건을 적용한 RM제도를 운영, 조직규모에서 큰 성장을 이뤘다. 롯데손보 전속설계사 수는 ▲2019년 1200명 ▲ 2020년 1577명 ▲2021년 1755명 등 소폭 상승에 그쳤다. 하지만 이후 설계사가 급증하며 ▲2022년에는 2692명 ▲2023년 3분기엔 3367명으로 2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전속 조직이 약 2배 확대됐다.
현재 진행 중인 파격적인 조건은 매각 이후 새로운 주인이 유지하기란 불가능한 무리수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오히려 부작용을 떠안게 될 것이란 관측이다.
롯데손보 RM으로 이동하는 설계사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롯데손보의 탄탄한 기본급 지원 아래 증원·영업에 매진, 실가동 인력 중심으로 조직을 불려나가는 RM이다. 이상적인 경우다. 이런 RM은 계약이 만료돼도 사업가형 관리자로 전환, 롯데손보에 정착할 가능성이 크다. 회사로서도 최초 투자금(기본급) 이상의 성과를 내 준 셈이므로 반기지 않을 리 없다.
다른 하나는 기본급을 받으며 최소 실적만 맞추려는 RM이다. 문제는 다수의 RM이 이 부류에 속할 수 있다는 것. 전속조직으로 정착할 경우 판매할 상품은 제한되고 인력 충원은 갈수록 어려워진다. 대세는 법인보험대리점(GA)으로 기운지 오래다. 게다가 조직 유지·관리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RM의 경우 사업가형 관리자로 전환한 순간부터 고난의 연속이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GA로 이직할 설계사들이 많다는 데 업계 관계자 다수가 동의한다.
기본급을 노리고 이직한 RM은 실적 조건을 충족키 위해 가족, 지인을 동원할 가능성도 크다. 실가동 인력 충원보다는 머릿수 채우기에 급급할 것이란 시각이다. 이에 가족·지인·본인 계약 유인이 커진다. 조직원 명의의 경유계약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RM으로서 계약 기간이 끝나면 조직이 와해될 가능성도 있다. 당초 가동 인력이 적었고, 다른 조직으로 옮기는 데 패널티도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작용을 롯데손보가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현 롯데손보 최대주주의 관심은 회사 매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높은 가격에 회사를 매각하기 위해 성장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필수적이다. 물론 무분별한 지출을 막기 위해 최소 실적 조건, 3개월 단위 평가, 수당률 조정 등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지속 가능한 성장보다는 단기적 수치 불리기에 방점이 찍혀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판매채널의 무게추는 이미 GA로 많이 기울었다. 그럼에도 롯데손보는 이를 역행, 전속조직을 늘리고 있다. GA의 아성을 넘어 굳건한 성을 세울지, 혹은 사상누각처럼 무너질지는 시간이 판가름 할 것이다. 다만 그 결괏값이 나오기 전 롯데손보의 주인이 바뀌게 될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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