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지금 보험사에는 워런 버핏이 너무나 많다

김승동 승인 2024.05.24 10:25 | 최종 수정 2024.05.24 11:23 의견 0

워런 버핏은 경이로운 투자자다. 그러나 그의 성공을 모두 투자 감각 덕으로만 돌린다면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 버핏이 투자를 시작한 것은 열 살 때였다. … 만약 그가 서른 살에 순자산 2만5000달러로 투자를 시작해 계속해서 연간 22퍼센트라는 놀라운 투자수익률을 거두었다고 치자. 그러다가 예순이 됐을 때 투자를 그만두고 은퇴했다고 해보자. 지금 그의 순자산은 대략 얼마 정도일까? 845억 달러는 아닐 것이다. 1190만 달러. 그의 실제 순자산보다 99.9퍼센트가 적은 금액이다. … 그의 재주는 투자였지만, 그의 비밀은 시간이었다.

-모건 하우절, 돈의 심리학에서 발췌

금융이나 투자에 관해 관심 있다면 워런 버핏에 대한 명성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는 꾸준히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특정 시기만 놓고 보면 그는 가장 위대한 투자자는 아니었다. 버핏 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사람이 많다. 하지만 버핏의 진가는 복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 효과를 최대한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버핏의 자산 99%는 50세 이후에 형성됐다. 그리고 그는 현재 93세다. 80년 이상 투자로 꾸준한 수익률을 달성한 덕분에 현재 그의 명성이 있는 셈이다.

김승동 뉴스포트 기자


조금 생각을 바꿔보자. 버핏이1930년에 출생한 것이 아닌, 50년만 더 일찍 태어났다고 가정해보자. 뉴욕증권거래소가 1792년 설립되었으니 50년 일찍 태어났다고 해도 버핏은 열 살부터 투자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93세까지 건강하게 생존할 가능성은 낮다. 1880년대 평균 수명이 40세를 넘기는 나라는 없었다. 즉 버핏이라고 해도 명성을 쌓기 전에 세상의 기억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다.

투자수익은 투자수익률에 투자원금을 곱한 값이다. 버핏은 적은 투자원금으로 시작했지만 80년 이상 지속적으로 평균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기에 지금의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거다.

지난해인 2023년 보험업계는 새회계제도인 IFRS17이 도입됐다. IFRS17 도입 후 각 보험사마다 워런 버핏이 있는 듯 하다. 그리고 특정 보험사는 워런 버핏이 여러 명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IFRS17은 미래가치를 현재가치로 환산한다. 보험은 초장기 상품이다. 이에 관찰 가능한 채권이 없는 만기구간에 해당하는 60년 이후는 장기선도금리(Long Term Foward Rate, LTFR) 추정값을 넣는다. 이 추정값으로 산출하는 기간이 워런 버핏의 총 투자기간보다 길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추정값이 아주 조금만 달라져도 엄청난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대부분의 보험사는 추정값에 적용하는 원금이 수십·수백 조 원이다. 투자수익=투자수익률×투자원금이라는 원칙을 대입하면, LTFR 추정값의 중요성이 엄청 크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IFRS17이 도입된지 2년 째를 맞았지만 회계에 대한 논란이 줄어들지 않는 건, 각 보험사에 속해 있는 워런 버핏이 투자수익률을 임의로 조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세한 조정 만으로 수백억원의 당기순익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실적착시를 어렵지 않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을 주축으로 금융소비자학회 및 학계·유관기관·연구기관·보험회사·보험협회 등이 참여, ‘보험개혁회의’를 진행했다. 보험개혁회의에서 가짜 워런 버핏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보험사의 실질은 달라진 게 없는데 회계 숫자만 달라진다면, 이는 보험산업의 신뢰도를 더 낮출 수밖에 없다.

지금 보험사에는 가짜 워런 버핏이 너무나 많다는 느낌이다.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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