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생명 채권재분류, 당국의 경영개입 방지 ‘궁여지책’

킥스 적용 유예·적기시정조치 방지...‘두 토끼 잡기’

김승동 승인 2022.02.24 07:21 | 최종 수정 2022.02.24 07:29 의견 0

한화생명이 올해 초 대규모 채권재분류 작업을 단행한 배경은 신지급여력제도(K-ICS, 킥스) 적용 유예와 동시에 적기시정조치를 피하기 위해서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내년 새국제회계제도(IFRS17) 기준을 적용하면, 한화생명의 재무건전성이 민낯이 드러날 것이라는 의미다.

2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한화생명은 지난 1월 초 매도가능증권 계정에 보유한 약 60조원의 채권 중 절반을 만기보유증권으로 재분류했다. 시중금리 변화에 따른 지급여력비율(RBC)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서다. 시중금리 상승기는 매도가능증권 평가익이 감소해 RBC를 떨군다.

한화생명 RBC는 지난 2020년 말 238.3%였다. 지난해 말에는 184.6%로 1년 만에 50%p 이상 급감했다. 같은 기간 시중금리(국고채 10년물)가 1.713%에서 2.250%로 50bp 이상 오르면서 채권평가이익 규모가 감소한 것이 RBC 하락의 배경이다. 채권재분류를 통해 RBC의 금리민감도를 12% 수준에서 5% 수준으로 줄였다.

채권재분류는 시중금리 인상에 대비, RBC 급락 방어를 위한 선제적 조치다. 채권재분류를 하지 않으면 하반기 RBC가 150% 밑으로 하락할 가능성도 있었다는 분석이다. 올해도 시중금리는 지속 상승, 22일 기준 2.717%까지 올랐다. 참고로 금융당국은 150% 이상의 RBC를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RBC는 올해까지만 적용하는 건전성 지표다. 내년에는 킥스로 변경, RBC 지표는 무의미해진다. 즉 RBC는 곧 사라질 기준인 셈. 건전성이 우수한 교보생명 등 여타 보험사는 채권재분류를 단행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RBC가 아닌 킥스 관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

그럼에도 한화생명이 RBC 하락을 방어하는 배경은 내년 킥스 적용을 유예받는 동시에 금융당국의 적기시정조치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위해서라는 게 업계 전문가의 분석이다.

한화생명은 지난해 대규모 흑자에도 배당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2023년 적용 예정인 킥스 관련 재무건전성이 미흡한 것이 배경이다. 이에 한화생명은 킥스 적용을 당분간 유예해 달라는 주문인 ‘경과조치’를 신청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한다.

금융당국에 경과조치를 신청하면 올해까지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을 기본자본으로 인정한다. 또 보험부채와 보험위험의 급격한 증가를 방지, 해당 보험사의 건전성 급락을 예방한다.

다만 경과조치를 신청해 킥스 적용을 당분간 유예했더라도, RBC가 100% 이하로 하락하면 적기시정조치가 발효된다. 적기시정조치는 금융당국이 보험사 건전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 경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영개선권고·요구·명령 3단계로 진행된다.

금융당국이 경과조치를 도입하는 것은 재무건전성 기준이 RBC에서 킥스로 변경될 때 발생 예상되는 급격한 재무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다. 제도개선으로 우량한 보험사가 불량한 보험사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자는 것. 그러나 RBC가 100% 이하라면, 이는 제도개선 효과와 상관없이 재무적으로 문제가 있는 보험사라고 판단한 것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금리인상을 시사, 당분간 우리나라의 금리도 오를 수밖에 없다“며 ”한화생명은 시중금리 상승으로 인한 RBC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채권재분류를 단행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채권재분류를 통해 최악의 경우 적기시정조치가 발효되는 것을 막고 킥스 경과조치를 신청, 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시간을 벌은 셈“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IFRS17 및 킥스 도입 준비를 위한 충분한 시간을 주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이에 적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그에 따른 조치를 즉시 진행할 것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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