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평원 건강정보 제출해야 보험금 지급합니다" 하나손보의 거짓말 이유는
고객이 건강정보 제출할 의무 없어..."보험금 안 줄 근거 제공하는 셈"
여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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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8 09:00 | 최종 수정 2023.12.1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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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손해보험이 고객 개인의 건강정보를 직접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이 알려져 논란이다. 건강정보는 민감정보로 구분된다. 고객이 건강정보 제출 의무가 없다고 대응하자 하나손보는 고지의무 위반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업계는 하나손보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조사비용을 아끼기 위해 고객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1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하나손보는 보험금을 청구한 고객에게 보험 가입 전 3개월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진료정보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고객은 심평원 진료정보를 제출할 의무가 없다고 대응했다. 이미 하나손보의 조사요청 동의서에 서명했기 때문. 고객으로선 보험금을 받기 위한 약관상 의무를 다한 것.
고객은 위임장을 가지고 제3기관(의료기관·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을 방문해 조사하는 건 하나손보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 심사를 위해 고객의 동의를 받고 제3기관 탐문을 한다. 가령 동네 병·의원 등을 방문해 고객의 진료기록 등을 확인하는 것이다. 고지의무 위반 여부를 살펴보기 위한 조사다.
하지만 하나손보는 탐문조사 대신 고객에게 심평원 진료정보를 제출하지 않으면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조사 편의를 위해 고객에게 부당한 요구를 한 셈이다.
하나손보 보상과 직원 A씨는 "고객 동의를 받았더라도 건보공단은 정보주체 본인 외에는 진료정보의 발급을 거절하고 있다"며 "보험사가 해당 정보를 확인할 수 없으므로 (조사 동의서에) 서명했더라도 사실상 동의를 안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심평원 홈페이지 접속에 필요한 인증번호를 알려주든지 진료정보 조회시 옆에서 확인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A씨는 "가입 전에 병원에 간 적이 없다면 왜 (심평원 진료정보를) 안 주는지 이해가 안 된다"면서 "계속 거절하는 이유가 뭔가 (꺼림칙한 게) 있으니까 그러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회사에서도 법률 검토를 다 받고 요청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A씨의 말 중 일부는 사실이다. 건보공단은 제3자(보험사 포함)가 민간 보험사 제출을 목적으로 진료정보 열람을 요청할 경우 정보주체의 위임장이 있더라도 열람을 거절하고 있다. 해당 정보가 보험금 부지급 근거로 사용, 정보주체나 제3자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A씨의 말에 거짓도 있다. 심평원은 건보공단으로부터 업무를 위탁받아 진료정보를 보관, 관리하고 있다. 보험사는 보험가입자의 동의를 받았다면 심평원 진료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심평원 관계자는 "보험사가 고객의 위임장을 받았다면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험사의 진료정보 열람 요청을 거절한 경우가 없다"고 밝혔다.
다만 보험사가 심평원 정보를 열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서류를 구비해 직접 방문해야 한다. 정보주체 본인만이 심평원 홈페이지나 앱(건강e음)을 통해 쉽게 조회가 가능하다. 하나손보가 무리해서 정보 제출을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란 게 업계의 해석이다. 조사 편의를 위해 쉬운 길을 택했다는 것.
한 보험전문 변호사는 "고객이 본인의 진료정보를 제출해야만 보험금을 지급하겠다는 건 보험사의 핑계로 보인다"면서 "보험금을 부지급하거나 방문 절차에 드는 비용을 절감하려는 목적이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도 "고객의 진료정보 제공이 보험금 수령을 위한 필수 절차인 것처럼 보험사가 고객을 겁박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며 "최근 심평원이 앱으로 쉽게 진료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 이후 여러 보험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비슷한 요청을 하는 사례를 접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고객이 진료정보를 보험사에 제출하면 스스로 보험금 수령에 불리한 근거를 제공하는 셈"이라며 "보험사가 조사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고객만 닦달하는 것은 문제가 크다"고 말했다.
취재가 시작되자 하나손보 관계자는 "안내 과정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조사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보험금 심사진행이 어렵다'는 식의 표현이 보험금을 줄 수 없다는 오해를 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앞으로 부적절한 표현이나 오해할 만한 안내를 하지 않도록 직원들에게 공지하고 교육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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