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손해보험이 후순위채 콜옵션(조기상환권) 이행 방법으로 일반계정 내 운영자금을 재원으로 내세웠다. 계약자적립금과는 무관한 자금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일반계정을 이용한 후순위채 상환은 감독규정에 어긋나며 계약자 보호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12일 롯데손보에 따르면 회사는 2020년 발행한 후순위채(발행총액 900억원)의 조기상환 자금을 일반계정 내 운영자금에서 조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자금은 임차료나 인건비 등 회사 운영에 쓰이는 재원이므로 보험계약자에 돌려줘야 할 돈과는 무관하다는 게 회사의 입장이다.
롯데손보 관계자는 "후순위채 콜옵션(5년) 행사는 관례"라며 "투자자 보호와 회사의 평판 리스크를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어 "계약자적립금은 대부분 특별계정에 설정돼 있고 일반계정 내 설정된 건 일부에 불과하다"며 "상환에 쓰일 자금은 계약자적립금이 아닌 운영자금이므로 계약자 보호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당국과 업계 회계전문가의 시각은 롯데손보와 다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일반계정도 결국 계약자의 보험료로 운영되는 자산"이라며 "이 자금이 빠져나가면 자본이 줄면서 지급여력비율은 더 하락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어 "지급여력비율 하락은 계약자 보호 문제와 직결된다"며 "운영자금이니까 빼도 괜찮다는 주장은 감독규정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한 보험회계 전문가도 "일반계정에 900억원의 운영자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표현 자체가 이례적"이라며 "설령 내부 지침상 운영자금으로 분류한 자금이 있다 해도 이 자금이 빠져나가면 지급여력비율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급여력비율이 감독규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결국 계약자 보호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통상 손해보험사의 일반계정에는 일반보험·자동차보험의 계약자적립금, 장기손해보험의 위험보험료와 사업비 등이 포함된다. 여기에 주주지분이 더해진다. 이 중 어떤 항목에서 상환 재원을 마련하더라도 지급여력비율이 기준치 밑으로 떨어지면 보험업감독규정 위반이다.
보험업감독규정 제7-10조에 따르면 보험사는 후순위채 조기상환 후 지급여력비율이 150% 이상인 경우에만 금감원장의 승인을 받아 조기상환할 수 있다.
다만 상환 후 지급여력비율이 150% 미만이라도 ▲상환 후 지급여력비율이 100% 이상 유지될 것 ▲당해 후순위채무에 비해 자본적 성격이 강한 자본조달로 상환될 후순위채무와의 대체가 명확히 입증될 것 ▲감독원장의 사전 승인시 기한 도래 전 채무자의 임의상환이 가능하다는 계약조항이나 당사자 간 합의가 있을 것 ▲금융시장 여건 변화로 당해 후순위채의 금리조건이 현저히 불리할 것 등 4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면 예외적으로 조기 상환이 가능하다.
이때 '자본적 성격이 더 강한 자본조달'이란 유상증자 또는 기존 후순위채보다 만기가 길고 금리 등 조건이 유리한 후순위채 등을 뜻한다. 롯데손보가 새로 발행할 채권의 만기가 더 길고 금리 상향 조항이 부재하는 등의 경우에만 충족할 가능성이 크다.
롯데손보는 업계에서 유일하게 예외모형을 적용할 만큼 재무건전성이 악화된 상태다. 여기에 콜옵션 행사 지연과 금감원과의 마찰 등 각종 이슈가 겹치면서 자본성 요건을 충족하는 후순위채 등 자본성증권 발행은 사실상 어렵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융사가 채무를 제때 상환하지 못하면 시장 신뢰와 회사 평판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롯데손보가 조기상환에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감독규정을 위반하면서까지 후순위채를 상환하려 할 경우 감독당국으로부터 제재가 불가피하고 오히려 시장 신뢰는 더 악화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롯데손보가 이번에 상환하려고 하는 후순위채 인수계약서에는 보험업감독규정을 충족한 경우에만 중도상환이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다.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투자했다면 투자자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